아동 보호 상담원의 진입 요청 거부, 끔찍한 상황 속에 어린이 방치한 셈
경기 포천시 한 빌라에서 시신 2구와 함께 발견된 박모(8)군이 이미 2개월 전 주민의 아동학대 의심 신고가 있었음에도 방치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등이 적극적으로 대응했다면 어린 아이가 쓰레기더미 속에서 시신과 지내는 끔찍한 상황을 막을 수 있었던 셈이다.
31일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등에 따르면 지난 5월 초 포천에서 “박군을 학교에 입학시키지 않는 등 교육적 방임이 의심된다”는 아동학대 의심 신고가 접수됐다. 해당 기관은 며칠에 걸쳐 이른 아침, 낮, 늦은 밤 등 시차를 두고 상담원을 파견했지만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집 안에 인기척이 느껴져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경찰은 강제 진입하기에는 범죄위험성 등이 부족해 난색을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상담원들은 인근 학교를 뒤져 박군이 2년째 취학유예된 사실을 확인했다. 박군의 엄마 이모(50)씨가 지난해 주민센터에 취학연기신청서를 냈고 올해는 5월 무렵 초등학교를 찾아가 ‘정상적인 학교생활이 어렵다’는 의사 소견서를 낸 것으로 파악됐다. 학교 관계자도 취학유예신청서를 받기 위해 5월 30일 박군의 집을 방문했지만 이씨와 연락이 되지 않았다. 취학통지서가 나온 지 2년째부터는 학교장이 진단서 등 증빙서류가 첨부된 취학유예신청서를 받아 유예 여부를 심의하도록 돼 있다.
아동보호기관 상담원들은 지난달부터 경찰에 압수수색영장 신청을 요청하기 위해 교육방임 등 학대 혐의를 입증할 자료를 취합해 오다 사건 발생 소식을 들었고 29일 박군을 인계받아 보호 중이다. 박군은 현재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 아동보호기관 관계자는 “박군이 발견된 당일에도 또 아동학대 신고가 접수됐다”며 “좀 더 적극적으로 조치를 취하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은 29일 박군과 함께 집 안에서 발견된 남성 시신 2구가 애초 이씨의 남편 박모(51)씨와 큰아들(28)일 것으로 추정했으나 큰아들이 경남 창원에 거주 중인 사실을 확인했다. 큰아들은 “박군이 친형제가 아니며 아버지는 10여년 전, 어머니는 2~3년 전 본 게 마지막”이라고 진술했다. 시신은 부패 상태로 미뤄 2주 이상 된 것으로 보이며, 시신의 얼굴에 랩이 씌워져 있고 1구의 목에는 스카프가 감겨져 있는 등 타살 흔적이 있다. 박군은 시신과 함께 쓰레기가 수북이 쌓인 집 안에서 경찰에 구조됐다.
경찰은 이날 이씨를 유력한 살인용의자로 보고 체포영장을 신청했다. 이씨는 30일 오전 8시30분쯤 포천시 신북면사무소 앞에서 직장 동료의 차에서 내린 뒤 종적을 감췄고 휴대전화 신호가 같은 날 오전 10~11시께 포천시내에서 끊겼다. 유명식기자 gij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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