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이라는 기간은 짐승이 인간이 된 적 있는 기간이다. 인간도 짐승이 될 수 있는 기간인가 보다. 아니면 원래 짐승들이었을까?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00일이 지났다. “100일 동안 슬퍼했으면 됐다. 이제 그만 슬퍼해라, 지겹다” 같은 막말을 내뱉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차마 지면에 옮길 수 없는 막말도 있었다. 인간은 존재에 대한 성찰과 생의 의미를 추구하는 ‘자의식’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타인과 정서적으로 교감하고 타인의 생각을 짐작할 수 있는 능력이 빼어나다는 점에서 다른 짐승들과 구별된다… 는 건 일반론적 얘기다. 세월호 참사 유족들에게 막말하는 사람들은 반례다. 소중한 존재를 잃은 채 평생을 살아가야 할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면, 뚫린 입이라고 내뱉는 말의 추악함을 자각할 수 있다면 그러지는 못할 것 같다. 정말이지 짐승 같다, 고 쓰고 보니 못난 인간에 비교당한 짐승에게 미안하다!
믿을 수 없는 참사였다.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차가운 물속에서 숨을 거뒀다. 물 밖의 사람들은 SNS나 브라운관을 통해 수장의 과정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며 발을 동동 굴렸다. 점점 밝혀지는 사건의 규모와 정황에 울화통이 치밀었다. 형용할 수 없는 비극이고 절망이었지만 역설적으로 희망의 서광이 비친 순간도 있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있어선 안 된다고 국론이 모였다. 잘못된 관행과 일그러진 구조를 개혁하는 계기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사건의 원인을 꼼꼼하게 짚고 책임소재를 명확히 할 것이라 기대했다.
고작 100일 정도 지났다. 그 때의 단단한 마음들은 어디로 용해돼버린 걸까? 언론의 보도행태가 한 몫 했을 것이다. 유병언 일가 관련 가십성 보도는 사람들의 말초적인 흥미만 충족시킬 뿐, 사건의 큰 줄기를 밝히는 것과 큰 관계가 없다. 세월호 관련 보도라는 명목으로 각종 가십 뉴스를 뿌려대니 일부 뉴스소비자들이 세월호 이슈를 “지겹다”고 느끼는 것도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정부는 해경 해체를 선언하고 형식적인 각료 교체를 시행한 뒤 발을 뺐다.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뒤 오랜 기간 외교순방을 명목으로 청와대를 비웠다. 지금은 휴가 중이다. (페이스북도 하셨다. 남들 일할 때 일 안하며 페이스북 하는 맛을 대통령님도 알게 되신 듯.) 이런 신호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일부 국민들은 “더 밝힐 진상이 있느냐”, “사건이 종결된 것 아니냐”고 느낄 수 있다.
다른 사회를 만들겠다던, 비극과 재난의 반복을 막겠다던 다짐을 다시금 떠올릴 때다. 얼마 전 단원고 생존학생들의 법정 증언을 통해 구조하지 않고 시간만 끌었던 해경의 행태가 재차 확인됐다. 해경이 해체된 것으로 끝난 게 아니다. 구하지 않은 이유를 규명해야 한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기관이 가장 중요한 시기인 사고 직후 수 시간 동안 한 게 없다는 것과 기업, 국회의원, 정부기관의 유착관계가 드러나고 있다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 유족들이 바라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은 이런 사실과 의혹의 지점을 파헤쳐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함이다. 한통속의 사람들로 구성된 조사기구가 진상을 제대로 밝히지 않고 ‘꼬리 자르기’를 한다면 발본색원은 요원하다. 때문에 유족들은 직접 신뢰하는 외부 전문가들을 조사기구에 추천하고, 이들에게 강한 권한을 주고자 하는 것이다. 좀 더 발전된 민주주의 방식이다. 선례가 없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자꾸 예전에 했던 짓을 반복하니까 문제도 반복해서 나타나는 것 아닌가? 21세기에는 상상력과 창의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던 어르신들이 많은데, 이번 기회에 상상력과 창의력 좀 발휘했으면 좋겠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선 더 나은 체계와 구조가 필요하다. 세월호 특별법이 만들어지고 책임소재가 명확히 밝혀져 더 나은 시스템이 구축되고 유족들의 슬픔이 경감되길 희망한다. 더불어 유족들에게 폭력을 가하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돌아보면 좋겠다. 슬퍼하는 사람에게 언제까지 슬퍼할 거냐고 닦달하고 그만 슬퍼하라고 강요하는 것, 유족들의 진의를 곡해하고 모함하는 것은 폭력이다. 짐승들도 서로의 상처를 핥아준다. 우리, 제발 괴물은 되지 말자.
최서윤 (격)월간잉여 발행·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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