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디에이고 불펜 제이슨 레인
패전 불구 6이닝 1실점 호투
월드시리즈 무대 밟은 타자 출신 마이너 7년 거쳐 투수로 재기
선발 투수 부상에 등판 행운 잡아 "희망을 품고 더 큰 도전 나설 것"
미 프로야구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가 맞붙은 29일 터너필드. 경기장을 가득 메운 애틀랜타 팬들은 경기 내내 덧셈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선발 어빈 산타나(32)가 8이닝을 소화하면서 무려 11개의 삼진을 뽑아낸 것이다. 이닝이 거듭될수록 ‘K’가 적힌 티켓은 쌓여갔고, 2005년 빅리그에 데뷔한 산타나는 개인 통산 한 경기 최다 삼진 기록(12개)을 노렸다. 하지만 2-0으로 앞선 9회초 빅리그 최고의 마무리 크레이그 킴브렐이 마운드에 올랐다. 그는 위력적인 직구를 앞세워 가볍게 32세이브(1위)째를 따냈다. 산타나는 기록 달성을 다음 기회로 미뤘지만 3년 만에 10승((6패) 고지에 오르며 플래시 사례를 받았다.
하지만 정작 미국 언론이 주목한 건 이날 패전 투수가 된 상대 선발이었다. CBS스포츠는 “서른 여덟 살의 신인 선발 투수가 좋은 공을 던졌다”고 전했다. 메이저리그 홈페이지 MLB닷컴도 “샌디에이고 역사상 최고령 투수가 선발로 등판했다”며 “그는 마운드 위에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이는 영화가 아닌 실제 일어난 일”이라고 보도했다.
주인공은 왼손 투수 제이슨 레인(38ㆍ샌디에이고)이다. 레인은 7회말 에번 개티스에게 솔로포를 내주기 전까지 애틀랜타 타선을 무득점으로 막았다. 직구 최고 시속은 141㎞에 그쳤지만 날카로운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이 일품이었다. 이날 성적은 6이닝 6안타 1실점.
레인은 원래 타자였다. 2002년 휴스턴에서 외야수로 데뷔해 2005년 주전으로 도약했고 그 해 타율 2할6푼7리에 26홈런 78타점을 기록했다. 정확성은 부족했지만 엄청난 파워로 ‘휴스턴의 미래’라는 찬사를 들었다. 하지만 타자 레인의 성장은 멈췄다. 약점이 노출되면서 연방 헛방망이질을 했다.
레인은 2007년을 끝으로 메이저리그에서 사라졌다. 마이너리그, 독립리그 등 실패한 유망주가 빅리그에서 멀어지는 과정을 그대로 밟았다. 그러다가 2010년 “그 송구 동작이면 짧은 이닝을 소화하는 불펜 투수로서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코칭스태프의 제안을 듣고 제 2의 야구 인생을 시작했다.
방망이는 오른손으로 치지만 공은 왼손으로 던지던 레인은 2010년 트리플A 4경기에서 4.2이닝 5안타 2실점(평균자책점 3.86)을 기록했다. 이듬해엔 6경기 13이닝을 소화하며 18안타 7실점(평균자책점 4.85)을 내줬다. 그리고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고 어깨를 단련한 그는 지난해 7월 마침내 ‘투수’란 타이틀로 샌디에이고와 계약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도왔다. 레인의 이날 선발 등판은 극적이었다. 지난달 4일 메이저리그에 승격된 그는 두 차례 중간계투로 등판했고, 남은 시즌에도 불펜에서 몸을 풀다 코칭스태프의 호출을 기다려야 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샌디에이고 선발 이안 케네디(8승9패ㆍ평균자책점 3.66)가 갑작스러운 옆구리 통증으로 선발 등판이 불가능했다. 버드 블랙 샌디에이고 감독은 ‘밑 져야 본전’심정으로 레인을 출격시켰다.
기대 이상의 호투를 선보인 레인은 케네디가 돌아오면 다시 불펜 자리로 돌아가야 할 처지지만 “2005년 월드시리즈에 진출했을 때만큼이나 감격적이다. 내 앞에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겠지만, 희망을 품고 더 큰 도전을 하겠다”고 말했다.
함태수기자 hts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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