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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칼럼] 박근혜 정부를 못 믿는 이유

입력
2014.07.2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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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경도 못 믿은 유병언 변사체 발견

국가기관 무능이 음모론까지 자초

세월호 참사, 간첩 조작이 불신 키워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청와대에서 주최한 전국 시.도지사 초청 오찬간담회에서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청와대에서 주최한 전국 시.도지사 초청 오찬간담회에서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야!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지난 21일 저녁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시신의 DNA감식결과를 보고 받은 서중석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의 첫 마디다. 안전행정부 장관과 연락이 닿지 않아 서 원장으로부터 대신 전화보고를 받은 안행부 1차관은 “무슨 그런 헛소리를 하느냐”고 했고, 연이어 소식을 전해들은 경찰청장 검찰총장 법무부장관도 “그게 말이 되느냐”는 반응이었다.

유씨 변사체 발견은 국과수 원장, 검경 수사 총책임자에게도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방금까지 눈에 불을 켜고 찾던 사람이 한 달도 훨씬 전에 이미 사망했다니. 한데 숨진 이의 신원 확인을 안 해 그 동안 모르고 있었다니. 막장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이런 비상식적이고, 비현실적인 일을 누군들 믿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일반 국민이 불신을 갖고 의혹을 제기하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왜 믿지 못하느냐”고 윽박지를 게 아니라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을 만든 이들을 탓하는 게 옳다.

이것으로 부족했던지 바로 다음날 후속탄이 터졌다. 이번엔 무능에 은폐까지 더해졌다. 검찰은 비밀 벽장에 숨은 유씨 검거 실패를 한 달 만에야 털어놨다. 범죄 영화에 단골로 나오는 게 벽장 뒤편의 비밀금고다. 초등학생도 알 만한 것을 수십 명의 베테랑 검찰수사관들이 2시간 동안 머물렀는데 벽을 두드려 볼 생각조차 안 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경찰이 뒤늦게 별장 수색을 하겠다고 하지 않았으면 이런 사실도 영원히 묻혀버릴 뻔했다. 한 수 아래로 보는 경찰에 들통나 망신을 당하느니 미리 자복을 하자는 심산 아니었나 싶다.

국과수의 유씨 시신 부검결과 발표는 불신의 정도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부패된 시신의 끔찍한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민간 법의학자들도 회견장에 동석시켜 설명을 하도록 했다.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모습이었지만 결국 유씨의 사인을 밝혀내지 못해 국민적 의혹을 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과학도 무능과 불신 앞에선 맥을 추지 못했다.

깊은 불신은 정부의 무능에서 비롯됐다. 막강한 공권력이 이렇게 무능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기 때문이다. 신뢰가 무너지면 국민들은 공식 해명이나 발표를 믿지 않게 된다. 누군가 이런 일을 짜맞췄으리라는 음모론도 사그라지지 않는다.

정부가 불신의 늪에 빠져있는데 대통령은 일언반구도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어제부터 공식휴가에 들어갔다. 휴가를 가는 게 문제가 아니라 정부와 검찰, 경찰 등 국가기관이 불신에 싸여 있는데 나 몰라라 하는 게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박 대통령이 그간 유씨 체포를 독려해온 사실을 감안하면 침묵은 이해하기 어렵다.

박 대통령은 유씨가 숨진 뒤에도 공개 발언을 통해 5차례나 검거를 지시했다. 경찰이 시신을 확보하고 있는 것도 모른 채 “이렇게 못 잡고 있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질타했다. 유씨 사망이 확인돼 대통령의 발언이 허언이 됐으면 국민에게 사과를 하든지, 아니면 검찰과 경찰을 호되게 나무라든지 뭔가 매듭을 지어야 하는 거 아닌가. 여당에서조차 검경 수뇌부 문책론이 나오는 마당에 대통령 휴가가 끝나기만 기다리고 손 놓고 있는 게 과연 옳은지 의문이다.

정부에 대한 불신이 커지는 현상을 박 대통령은 심각하게 봐야 한다. 세월호 참사에서 국민들이 분노하는 건 사고를 초래한 적폐보다는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한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이었다. 그런 정부를 이끄는 대통령이 아랫사람 탓만 하고 사과에 인색한 모습이 국민들을 더 화나게 했다. 국민들이 참사 당일 묘연했던 8시간의 대통령 행적을 알고 싶어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여론을 조작해 선거에 개입하고 멀쩡한 사람의 기록을 위조해 간첩을 만들려고 한 국가기관과 정부를 어떻게 국민들이 믿을 것이며, 그런 기관을 과감히 문책하려 하기 보다는 감싸는 듯한 행태를 보이는 대통령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 것인가. 유병언 사건을 비롯한 정부에 대한 불신 현상은 그 누구도 아닌 정부가 자초한 것이다. 그 한가운데에 박 대통령의 투명하지 못한 국정운영이 자리하고 있다.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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