컷 패스트볼(커터)이냐, 슬라이더냐.
류현진(27ㆍLA 다저스)의 신무기를 놓고 말들이 많다. 고속 슬라이더라는 의견이 있는 반면 영락없는 커터라는 목소리도 크다. 팀 내부에서 조차 의견이 갈린다. 릭 허니컷 다저스 투수 코치는 “그의 커터가 점점 더 발전할 것”이라고 했다. 주전 포수 A.J 엘리스는 변함없이 슬라이더 사인을 내며 공을 받고 있다.
커터와 슬라이더의 결정적인 차이는 스피드다. 직구 보다 5㎞ 정도 느리면 커터, 10~15㎞ 차이가 나면 슬라이더다. 커터는 슬라이더 보다 덜 떨어지는 대신 홈플레이트 부근에서 예리하게 휘어져 땅볼을 유도하기 좋다. 지난해 은퇴한 뉴욕 양키스의 전설적인 마무리 마리아노 리베라, LA 다저스의 수호신 켄리 얀센, 왼손 투수 중에는 클리프 리(필라델피아)가 주무기로 던진다.
류현진은 지난해만 해도 ‘커터를 던진다’는 오해를 사지 않았다. 메이저리그 기록 사이트 브룩스베이스볼에 따르면 류현진의 직구(91.12마일)와 슬라이더(82.44마일)는 평균 14㎞ 정도 차이가 났다. 그런데 올 시즌, 평균 88.11마일의 변화구가 이 사이트에 추가됐다. 6월12일 신시내티전부터 던지기 시작했다. 22일 피츠버그전에서도 구사한 것으로 나와 있다. 브룩스베이스볼은 직구보다 5㎞ 느린 이 공을 ‘커터’로 적어놨다.
이쯤 되면 취재진 사이에서 류현진의 새 무기는 커터로 통일될 법 했다. 스피드와 휘는 각도가 커터와 다른 게 없었다(필자도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류현진이 인터뷰에서 “커터가 아닌 고속 슬라이더를 던진다”고 못박으면서 상황이 복잡해졌다. 임의대로 무작정 ‘커터’라고 쓸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커터가 고속 슬라이더로 변했다. 류현진이 그렇게 던지고 있다. 당초 클리프 리와 비슷하게 커터를 구사하던 류현진은 어느새 팀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처럼 빠른 슬라이더를 뿌리고 있다. 스피드는 유지하되 일부러 더 떨어뜨리는 타고난 손기술을 발휘 중이다. 최근 들어 상대 타자들이 직구처럼 오다가 갑자기 ‘사라지는’ 공에 연거푸 삼진을 당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공의 수평 움직임(Horizontal Movement), 수직 움직임(Vertical Movement)이 달라졌다. H-mov는 쉽게 말해 공이 얼마나 꺾이는지, V-mov는 공이 가라앉는 정도를 말해준다. H-mov는 수치가 클수록 좌우로 더 흔들리고 V-mov는 수치가 클수록 공이 덜 떨어졌음을 의미한다. 단위는 나란히 인치로, 각 구단 에이스들이 직구를 던질 때 V-mov는 10이상 나온다.
리베라는 은퇴하던 해 2013년 커터의 H-mov가 2.27, V-mov는 7.10이었다. 클리프 리는 사이영상을 받은 2008년(22승3패) H-mov 2.42, V-mov 4.92를 찍었다. 공이 휘는 각도는 엇비슷한데 리베라의 커터가 기록상으로도 거의 가라앉지 않는 특징을 드러냈다.
류현진이 처음 140㎞의 변화구를 던졌을 때 V-mov는 5.32였다. ‘커터의 달인’ 클리프 리 보다 오히려 수치가 높아 무조건 커터로 볼 수밖에 없다. 그러다 6월23일 샌디에이고전(4.94), 1일 클리블랜드전(4.82), 21일 피츠버그전(2.98) 등 점차 V-mov가 낮아지며 일부러 각을 만든 것이 증명됐다. (브룩스베이스볼이 슬라이더로 표기했지만) 28일 샌프란시스코전의 V-mov 역시 3.39였다.
ESPN 중계진은 “류현진이 매서운 슬라이더를 던지고 있다. 오른손 타자의 몸쪽으로 파고 드는데 커쇼가 던진 공의 위력과 흡사하다”며 “제구가 잘 돼 오른손 타자가 받아치기 쉽지 않다”고 극찬했다.
함태수기자 hts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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