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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의 얼기설기] 소화제가 필요한 세상

입력
2014.07.2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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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의 합이 전체 될 수 없어

편의성이 통합 막는 부메랑으로

세상보는 복잡계의 시각 되찾아야

누구에게나 첫사랑의 아련한 추억이 있듯이 이상형 연예인 한 둘쯤은 간직하며 살고 있다. 각자의 이상형을 알아보는 ‘이상형 월드컵’은 TV프로그램의 고전이 된지 오래인데, 서로의 이상형을 알아보는 놀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고전에 속한다. TV프로그램에서처럼 여러 연예인들의 사진을 비교해 이상형을 찾을 수도 있지만, 다른 방식의 접근도 가능하다. 가령 내가 생각하는 가장 눈이 예쁜 연예인의 눈을 사진에서 오려내고, 마찬가지로 가장 아름다운 코, 가장 사랑스러운 입과 귀를 각각 다른 연예인의 사진에서 가져와서 합쳐보자. 얼굴 형태나 피부색 역시 여기저기서 가져온다. 이런 방법이라면 천상의 세계에서나 존재할 법한 절세미인이 눈앞에 나타날 것 같다. 하지만 대개 이런 작업의 결과는 현실세계에 존재하지도 않지만 천상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인물을 마주하기 십상이다.

비록 각각의 사진에서 가져온 눈과 코, 입과 귀 등은 가장 아름다운 것이었을지 몰라도 이들간의 조화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어떤 인물이나 사물, 시스템 등을 살펴볼 때 각 부분만을 봐서는 얽히고 설킨 복잡한 관계가 존재하는 전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즉 부분의 합으로는 전체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인데, 이런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학문이 복잡계이다.

태초에 우주가 탄생할 때 자연에 존재하는 것들을 설명하기 위한 학문은 하나였다. 지금은 물리학, 전자공학, 사회학, 경영학, 철학 등의 다양한 학문분야로 나뉘어지지만, 이런 구분은 비교적 최근에 이뤄졌다. 이전에는 법학자가 곧 철학자였으며, 의사이자 건축가이며 작가이고 과학자였다. 고대의 학자가 현대보다 훨씬 우수해서 그렇다기 보다는, 여러 분야로 갈기갈기 나눠져 있는 현재의 잣대로 과거를 바라보니 모든 것을 아우르는 슈퍼 천재가 탄생했을 뿐이다.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이 점점 늘어나고, 학습과 연구의 편의성을 위해 학문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학문간의 장벽이 그리 높지 않았고, 적절한 분업과 활발한 교류는 보다 적은 노력과 자원의 투입으로 자연의 본질을 이해하고 인류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데 더욱 효율적인 방법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편의상의 구분은 서로의 소통과 화합을 막는 거대한 장벽으로 변했다. 각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 잘 모르며 독자적인 발전을 추구해 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각자가 바라보고 있는 것들은 부분에 해당할 뿐이고, 이것만으로는 절세미인의 이상형을 만들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상형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수학과 경영학, 생물학과 전자공학 등이 서로 협력해 조화를 이뤄야 하지만, 그간의 장벽이 만들어낸 서로 다른 용어와 문화는 학문의 바벨탑을 쌓았다. 가끔 다른 분야에서도 내가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 연구들이 이뤄지고 있는 것을 보며 놀라곤 하는데, 우연의 일치에 신기해 할 것이 아니라 바벨탑이 만든 비효율의 결과에 아쉬워해야 한다.

이제 학문간의 융합을 위해서는 억지로 융합을 부르짖어야만 하고, 융합연구에 가산점을 부여해 별도로 지원하는 등의 추가적인 노력을 해야만 한다. 원래 하나였던 학문을 나눠놓고 벽을 쌓아온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리기 위한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고교 교육부터 문과와 이과를 구분해 왔다. 이것 또한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한 과제에 해당한다. 하지만 오랫동안의 많은 노력에 비해 성과가 미미한데, 무엇이든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 기본으로 돌아가는 건 말하기는 쉬워도 이루기는 어려운 법이다. 그나마 아직 너무 늦지 않았다는 건 불행 중 다행이겠다.

얼기설기 엮여있는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각자의 상황만을 바라봐서는 안 되며, 반드시 다른 이들과의 조화와 상호작용을 이해해야 한다. 이것이 복잡계 이론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이다. 복잡계의 시각은 비단 과학과 공학의 영역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이런 사고방식은 비단 학문분야 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도 적용될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처방은 서로 소통하고 화합하는 것을 제일로 치는 소화제이다.

포스텍 산업경영공학과ㆍ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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