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재계는 우리 경제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원화절상과 노사문제, 중국경제의 침체우려 등 대내외 불안요소를 지적하는 의견부터 일본과 같은 ‘잃어버린 20년’을 경험할 수 있다는 걱정까지. 원인도 다양하고 우려의 수위도 깊습니다. 그렇다 보니 위기상황과 극복방안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표현도 점점 더 늘어갑니다.
지난 22일 열린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경제5단체간의 조찬 회동에서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재도약하느냐 쇠락하느냐의 ‘골든타임’이 2년밖에 남지 않았다. 정부가 구조개혁의 ‘킹핀’인 규제개혁에 강도 높게 나서야 한다”고 언급했습니다. 골든타임(Goldentime)은 신속히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위기상황에 직면하는 귀중한 시간을 뜻하고, 킹핀(Kingpin)은 볼링에서 쓰러뜨리면 스트라이크가 될 확률이 높은 핀으로 핵심목표를 지칭할 때 사용됩니다.
두 용어는 그 동안 재계나 정부 당국자, 일부 학자들이 구사하던 전문용어였지만 최근에는 언론에서도 이를 언급하는 빈도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용어설명을 해주지 않으면 아직도 말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30대 직원은 “박 회장이 하고 싶은 말이 앞으로 2년이 재도약과 쇠락을 결정하는 중요한 시기이니 규제완화가 시급하다는 거죠?”라고 제게 물었습니다. 고개를 끄덕였더니 “그런걸 왜 그렇게 어렵게 표현하는지 모르겠다”고 투덜거렸습니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23일 대한상의 주최로 열린 제주포럼 특별강연에 참석해 한국의 통상전략에 대해 한 참석자의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넛크래커’로 전락하지 않고 반드시 ‘린치핀’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넛크래커(nut cracker)와 린치핀(Linchpin)의 의미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없다 보니, 질문했던 참석자는 윤 장관의 대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넛크래커는 호두껍질을 까는 기계로 보통 넛크래커 속 호두처럼 강대국 사이에 끼여 힘을 못 쓰는 좋지 않은 상황을 비유한 것이고, 린치핀은 마차나 수레바퀴가 빠지지 않도록 축에 꽂는 핀으로 윤 장관은 한국이 중국과 미국을 연결하는 핵심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우리 경제의 위기상황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눈길을 끄는 용어를 선택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되겠지만, 괴리감 없는 표현을 쓰는 게 더욱 중요합니다. 특히 우리말로 쉽게 설명할 수 있는데도 굳이 외래어를 사용하는 것은 오히려 전달력을 감소시킵니다. 말뜻조차 이해하기 어렵다면 정부나 재계가 위기의 심각성을 국민들에게 알리는데 도움을 주기는커녕 소통을 가로막는 벽이 되지 않을까요.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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