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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에세이] 접시꽃에 눈길 머문 고운 사랑

입력
2014.07.2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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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제부도에 다녀왔다. 경기 화성시 송산면의 마산초등학교에서 학부모를 위한 인문학 강좌를 마련했다고 초대해 기꺼운 마음으로 달려갔다. 작고 아담한 작은 초등학교다. 예정보다 일찍 도착해 학교 여기저기 둘러보았다. 첫눈에도 예쁜 학교라는 느낌이었는데, 볼수록 놀랍게 예뻤다. 가장 특이한 건 학교 한 바퀴를 도는 둘레길이었는데, 전혀 인공적인 느낌이 들지 않아 마치 아주 오래된 숲길을 걷는 기분이었다. 대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은 청량하고 산뜻해서 한낮의 폭염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그 길로 등교하는 아이들은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을 품으며 자랄까 생각하니 부럽기까지 했다.

학교 안도 예뻤다. 조용히 유영하는 작은 물고기들이 앙증맞았고, 수십 마리 토끼들이 뛰어다니는 작은 동산에서 아이들이 자연과 생명을 느낄 것을 생각하니 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예전에는 많은 학생들이 다녔지만 지금은 분교만큼의 아이들만 다니고 있는 학교의 건물은 무지개 색깔로 칠해져 일곱 가지 색깔인데도 요란하지 않아 그대로 팔레트였다. 그러나 내 눈길을 끈 가장 놀라운 것은 접시꽃이었다. 접시꽃은 그리 화려한 꽃은 아니다. 하지만 장소가 특이했다. 계단을 올라 현관으로 이어지는 시멘트길 끝에 피었다. 꽃이 피었으니 그게 접시꽃인지 알지 처음 싹이 올라왔을 때는 그저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잡초로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걸 뽑아내지 않았다. 다른 곳도 아닌 학교 현관 바로 코앞이니 누구라도 뽑았을 것이다. 왜 그냥 두었을까?

시멘트를 뚫고 나온 풀이 기특하기도 했을 것이지만, 그게 자라서 어떤 꽃을 피울지 알아서 기다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날마다 자라는 그 풀을 끝내 뽑아내지 않았기에 접시꽃은 고마움을 표하는 듯 소담하게 피었다. 그 어떤 것보다 그 꽃을 통해 전해지는 가르침이 크지 않을까? 제 자리에 있지 않다고, 못났다고, 늦되다고, 눈에 거스른다고 뽑아내고 솎아내며 사는 게 흔한 일인데, 날마다 등굣길에 그 접시꽃 보며 교실로 들어가는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진짜 소중한 게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맑고 밝은 아이들의 표정이며 인사하는 모습을 보니 그 까닭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연은 가장 위대한 스승이다. 자연은 무의미하게 존재하지 않으며 어떤 것도 편애하지 않는다. 모든 존재는 나름의 의미와 가치를 갖는다. 그게 자연의 질서이며 힘이다. 그걸 사람들만 무시하거나 잊는다. 힘이나 돈 없다고, 재능 부족하다고 뽑아내고 밀어내려 애쓴다. 만약 서울의 말끔한 학교 현관 앞에 어린 접시꽃 싹이 시멘트를 뚫고 나왔다면 그대로 보듬었을까? 틈입자나 불청객으로만 여겨 보는 즉시 뽑았을 것이다. 하지만 작은 시골 학교 선생님들과 아이들은 그걸 대견하게 여기고 애틋하게 바라보고, 꽃이 피었을 때 따뜻하게 품었다. 자연이 전해주는 깊은 가르침을 그렇게 느낄 수 있는 그 학교는 이미 그것만으로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었다.

학부모들이라고 다를까? 그 둘레길을 함께 다듬고 둘러보면서 아이는 한 집이 키우는 게 아니고 동네가 키운다던 옛 어른들의 가르침을 새삼 떠올렸을 것이고, 아이들이 자신들의 동창 후배라는 사실 때문에라도 더 애틋하게 보듬었을 것이다. 그런 학교보다 더 아름다운 곳이 있을까? 그 흔한 학원도 동네에는 보이지 않고 포도밭이 널리 퍼져 있는 학교가 이미 자연이 전해주는 가르침을 담뿍 지니고 있는 건 덤이다. 그런 학교는 자연을, 사람을, 행복을 넘치게 가르친다. 그런 학교를 지키는 이들이 새삼 고마웠다. 현관 앞 시멘트 포장길 뚫고 나온 접시꽃을 기다리고 품을 줄 아는 것만으로도 교육은 이미 이뤄진 셈이다. 그러고 보니 교장실에 피아노가 있는 것도 처음이라는 상쾌함이 또렷한, 예쁜 학교가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도회의 어느 학교보다 더 행복하고 아름다운 학교가 오래오래 남아 일부러 그곳에서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전학 오게 될 그런 날이 오게 되더라도, 그 접시꽃을 해마다 지켜볼 수 있기를 돌아오는 내내 꿈꾼, 여름날 행복한 추억이었다. 송산 포도처럼 싱싱하고 탐스럽게 자라는 아이들과 함께.

김경집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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