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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구경꾼과 목격자

입력
2014.07.2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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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원은 유인원을 죽이지 않는다.’ 영화 ‘혹성탈출-반격의 서막’에서 잊히지 않는 문장이다. 유인원을 이끄는 지도자 시저는 유인원이 인간보다 낫다고 믿었고, 이 문장을 공동체의 원칙으로 삼았다. 유인원끼리 반목하며 목숨까지 빼앗자 시저는 유인원이나 인간이나 다를 바 없다며 안타까워한다. 그래도 유인원이 인간보다 못한 적은 없었다고 여기는 듯하다.

사진 한 장이 일주일 내내 송곳처럼 가슴을 찔렀다. 늦은 밤 이스라엘 스데롯 언덕을 찍은 사진이다. 가자지구 쪽으로 가지런히 의자를 놓고 앉은 사람들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하다. 축제를 기다리는 관광객처럼 들떠 있다. 그 밤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를 폭격했다. 언덕 위의 이스라엘인들은 폭음이 터질 때마다 환호했다고 기자는 전했다. 누군가의 참혹한 죽음이 누군가에겐 밤나들이의 소소한 기쁨이었음을 증명하는 사진이다.

폭격과 함께 사망자 숫자가 시시각각 늘었다. 지난 봄 진도 앞바다에 침몰한 세월호의 슬픔이 겹쳤다. 구조자 숫자는 멈췄고 사망자 숫자만 늘어나던 밤들!

가자지구 곳곳에서 아직 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팔레스타인 아이들이 죽었다. 한 쪽에선 부모들이 죽은 자식을 부둥켜안고 오열하는데, 다른 쪽에선 그 죽음을 바라보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불지옥이 따로 없었다.

‘삼국지연의’에서 남만 정벌에 나선 제갈량은 반사곡에서 적군 3만 명을 몰살시킨 후 눈물을 쏟았다. 국가를 위해선 영토 확장이 꼭 필요했으나 너무 많은 사람을 죽였기 때문이다. 명분이 아무리 그럴 듯해도, 군인이든 민간인이든, 생명을 앗는 짓은 피해야만 하는 마지막 선택이다. 어쩔 수 없이 죽고 죽이는 상황이 만들어진다면 우리는 이 억울한 주검들의 목격자가 돼야 한다. 왜 그들이 그렇게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한 명이라도 더 살릴 방법은 없었는지 따져야 한다. 무섭고 슬프고 아파서 외면하고 싶더라도 목격자답게 두 눈 크게 뜨고 지켜봐야 한다. 그리고 목격담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낼 필요가 있다.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준비한 ‘세월호 사고 100일 희생자 추모공연, 영혼을 위한 소나타’ 독주회와 만화가 박재동이 선보이고 있는 세월호 희생자들의 얼굴 그림이 바로 이 목격담들이다. 법정의 증언처럼 딱딱하지 않아도 된다.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자리면 충분하다. 세월호 대책위에서 벌이는,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1,000만 명 서명운동도 대한민국 국민이 모두 이 비극의 목격자가 돼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목격자가 아닌 구경꾼으로 전락하는 이들도 있다. 스데롯 언덕에 모여 웃고 떠든 자들이야말로 전형적인 구경꾼이다. 타인의 불행에 가슴 아파하며 눈물 흘리거나 위로의 말을 건네는 대신, 그 죽음을 조롱하는 자들! 지금 가자지구에서 숨이 끊긴 인간은 인간이 아니라고, 개돼지보다 못하다고, 벌레라고 강변한다. 인간이라면 어찌 돕지 않겠느냐고, 같이 아파하지 않겠느냐고 능청스럽게 되묻기까지 한다. 편견과 복수심이 공감의 두 눈을 멀게 만든 것이다.

영화 ‘혹성탈출’에선 목격자들을 구경꾼으로 변질시키는 장면이 나온다. 시저에 이어 권력을 잡은 코바는 인간을 죽이라고 애쉬에게 명령한다. 애쉬가 명령을 따르지 않자 코바는 ‘유인원은 유인원을 죽이지 않는다’는 원칙을 깨고 애쉬를 난간 밖으로 던져 살해한다. 이 광경을 지켜본 유인원들은 코바에게 항의하지 않고 오히려 그의 명령에 순종한다. 유인원 혹은 인간이 죽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 구경꾼이 된 것이다.

시저가 돌아오기 전까지 대다수의 유인원은 유인원으로서의 자부심을 잃고 구경꾼 생활에 빠르게 적응했다. 말하긴 어렵고 침묵하긴 쉽다. 폭격 외엔 방법이 없었느냐고 문제제기하긴 어렵고 군인과 민간인을 잘 가려 조준하라고 충고하긴 쉽다. 기억하긴 어렵고 망각하긴 쉽다. 시인 이면우는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고 적었다. 바뀌는 숫자 앞에서 ‘아무도 죽지 않는 밤은 없다’고 확인하는 여름밤이다. 적군인지 아군인지, 기독교도인지 이슬람교도인지, 유인원인지 인간인지 구별하지 말라. 구경꾼의 의자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고 스러져간 생명을 위해 잠시라도 눈을 감자. 목격자가 되자.

김탁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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