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제도 개선안 입법 예고
치과협회 반대로 7개월째 보류
“딸에게 치아 교정을 시키려 해도 전문의를 내건 치과의원을 찾을 수 없어요. 교정치료도 대학병원에 가야만 할까요?” 중학생 딸을 둔 이모(44ㆍ여)씨의 항변이다.
보건복지부는 올 1월부터 치과의원도 일반 의원처럼 전문과목을 표시하도록 했지만 아직까지 ‘치과 전문의 제도’가 정착되지 않고 있다. 전국 1,600여 치과 가운데 10곳(전체 0.06%ㆍ지난 6월말 현재)만 교정ㆍ보철 등과 같은 전문과목을 내걸고 있는 실정이다.
2008년 전문의 자격 시험이 시행된 이후 지난해까지 배출된 치과 전문의는 전체 치과의사 2만6,791명 가운데 1,571명(5.9%)다. 2008년 이전 시험제도가 없어 시험칠 기회조차 없었던 치과의사들까지 포함하면 8,500명이나 된다.
이 지경이 된 데는 치과의사단체인 대한치과의사협회(치협)의 탓이 크다. 치협이 기존 전문의 과정을 마친 치과의사에게 전문의 시험 응시자격을 주는데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보건정책이 ‘이익단체의 덫’에 걸려 표류하고 있다는 지적이 높다.
치과 전문과목 내걸면 다른 과목 진료 못해
치과전문의 제도는 1962년 도입됐다. 당시 의료법 개정으로 치과도 일반 의학 진료과목처럼 치주과, 교정과, 보철과 등의 전문 진료과를 둘 수 있게 됐고 치과 의사들은 인턴과 레지던트(전공의) 과정을 통해 수련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당시엔 치대를 졸업한 치과의사 대다수가 곧바로 치과의원 등에서 진료해 인턴ㆍ레지던트 수련을 한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복지부도 다수의 치과의사들의 눈치를 보느라 전문의 시험제도를 만들지 않았다. 복지부는 1989, 1996년 두 차례 치과전문의 제도 도입을 입법 예고했지만 수련을 하지 않은 대다수 치과의사의 극렬 반대로 무산됐다. 일반 치과의사보다 3~4년 더 수련했지만 제도 미비로 전문의 자격을 인정받지 못한 치과의사들이 헌법소원을 내 이겨 간신히 2008년부터 치과전문의 시험이 생겼다.
그렇지만 복지부는 치협과 협의해 제도가 생긴 2008년 이전에 수련 받은 치과의사에게는 시험 자격을 주지 않아 4,900명의 치과의사가 수련 받고도 전문의가 되지 못했다. 게다가 치과는 전문과목을 표시하면 해당 전문과목만 진료해야 한다는 의료법 조항을 치협 요구로 만들게 되면서 전문과목 표방이 더욱 제한됐다. 그래서 치과 전문의가 1,850명이지만 전문과목을 내건 치과의원은 연세구강내과치과, 제트구강악안면외과치과 등 10곳에 불과하다.
게다가 전문의가 되기 위한 전공의 교육과정은 전문의가 맡는데, 전문의 배출을 최대한 억제하려는 치협의 요구로 교육을 맡은 치대 교수에게도 전문의 자격 취득 기회가 봉쇄됐다. 지금의 치대 교수는 치과 전공의를 교육시킬 수 있는 ‘전속지도전문의’ 자격이 2016년까지만 주어진다. 이후에는 전문의 자격을 가진 교수가 거의 없어 전문의 배출이 어려운 상황이다.
“치과전문의 시험 응시 기회 늘려야”
이에 치대 교수들과 이미 전공의 과정을 마쳤지만 시험칠 기회가 없었던 치과의사들이 집단 행동에 나섰다. 치대 교수들과 전문학회 등 7개 단체가 모여 ‘국민을 위한 올바른 치과전문의제도 개선방안 관련 단체 연합’을 결성했다. 지난 1일부터 세종시 복지부 청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급기야 15일에는 복지부 청사 앞에서 250명이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이 단체 관계자는 “2007년 이전 전문과목 수련자에게 전문의 시험 응시 자격을 주는 것은 물론 대학병원 교수들에게도 전문의 자격 취득 기회를 줘야 한다”며 “정부는 이익단체인 치협 눈치를 더 이상 보지 말고 약속대로 시행하라”고 했다. 그는 “정부가 치과전문의 제도 정상화를 위해 2007년 이전 수련자 시험 응시와 대학병원 교수의 전문의 자격 인정 등을 내용으로 한 새 치과전문의 제도 입법안을 공청회 등을 거쳐 만들었고 올해 입법 예고하려 했지만 치협 반대로 7개월째 미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치협은 전문의 자격 시험대상 확대에 부정적이다. 최남섭 치협 회장은 “이들 단체 주장을 담은 복지부 안에 대해 대의원 의견을 물은 결과, 반대(52%)가 찬성(44%)보다 많았다”고 했다. 그는 “치과 전문의가 늘면 환자의 치료비 부담도 커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