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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재·매각·통합 발등의 불… 금융 CEO "휴가, 꿈도 못 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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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재·매각·통합 발등의 불… 금융 CEO "휴가, 꿈도 못 꿔"

입력
2014.07.23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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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여름 휴가를 반납하고 쉼 없이 일에 매달리는 게 미덕이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유난히 여기저기서 독려인지 명령인지 알 수 없는 “제발 휴가를 떠나라”는 ‘윗분’들의 목소리가 자주 들려 옵니다. 연차수당 비용이 부담스러운 재계는 물론이고, 정부에서는 ‘공무원 휴가 하루 더 가기’ 캠페인을 펼치고 있습니다. 심지어 경제부처 장관들까지 휴가를 권장하고 나섰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침체된 내수를 진작하기 위해 국내 여행 활성화에 사활을 걸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흐름에서 완전히 비껴 있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은행권입니다. 금융감독원의 무더기 제재가 예정돼 있는 데다, 민영화나 통합 등 현안도 산적해 있어 은행권 최고경영자(CEO)에게 휴가는 멀고도 먼 이야기입니다.

23일 금융계에 따르면 여름휴가 계획을 잡은 주요 금융지주사와 시중은행 CEO는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은 24일 제재심의위원회가 예정돼 있습니다. 휴가는커녕 당장 조직과 자신의 안위를 걱정해야 할 처지입니다. KT ENS 부실 대출, 금감원 종합검사 등으로 징계가 예상되는 김종준 하나은행장 역시 휴가계획이 없습니다. 지방 영업점 방문 등으로 휴가를 갈음할 예정입니다. 이순우 우리금융지주 회장 겸 은행장은 우리은행 분리매각 방침이 정해짐에 따라 휴가 없이 세부 민영화 계획에 매달리기로 했습니다. “전에도 휴가다운 휴가를 가신 적은 없는 것 같다”는 게 직원들의 전언입니다. 김한조 외환은행장은 휴가일정을 아직 정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나은행과 조기통합을 선언하면서 노조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어 휴가 내기가 쉽지 않을 듯합니다. 한동우 신한금융지주 회장과 서진원 신한은행장도 아직 휴가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권선주 IBK기업은행장이 그나마 8월 첫째 주 가족과의 국내여행 계획을 확정했습니다. 하영구 한국씨티은행장은 7월말 직원들과 함께 무주택자에게 집을 지어주는 한국해비타트 ‘희망의 집짓기’ 활동에 참여하는 것으로 여름휴가를 대신합니다.

이러니 은행권 임직원의 속이 참 많이 탈 듯합니다. CEO가 휴가를 포기하면 임직원도 눈치를 보게 마련이니까요. 김주하 농협은행장이 31일과 8월 1일 이틀 간 휴가 일정을 잡은 것도 “행장님이 안 가시면 직원들도 못 간다”는 주변의 강력한 조언에 못 이겨서라고 합니다.

은행원들이 더욱 답답한 건 이런 현실이 요즘 은행권의 현주소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시중은행 한 임원은 “경영이 불안정하니 요즘은 뭘 할 수도 안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하루 빨리 은행권이 제 자리를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추락한 자존심이 휴가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이겠죠.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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