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리호 사업 수요 감소하던 시점
"싸고 여행 묘미 느낄 수 있다" 항만청 공문, 서울시 교육청 받아
안전 시스템 마련에 손 놓은 정부, 선진국 지자체 공영제 대안 살펴봐야
‘88만원 세대’의 경제학자 우석훈(46ㆍ내가 꿈꾸는 나라 공동대표) 박사가 이번엔 ‘33만원’을 들고 우리 앞에 섰다. 이 돈은 세월호에 올랐던 경기 안산시 단원고 학생들이 낸 수학여행비다. 우 박사는 신간 ‘내릴 수 없는 배’(웅진지식하우스)에서 33만원의 의미를 “돈을 벌어 교육에 쓴다는 상식이 아닌, 교육을 돈 버는 데 쓴다는 비상식의 상징”이라고 못박는다.
책을 쓰기 위해 자료를 모으던 중 입수한 문서가 근거다. 서울시교육청이 부산지방해양항만청과 제주해양관리단에서 전달 받아 2011년 9월 초ㆍ중ㆍ고교에 보낸 협조 공문이다. 우 박사는 서울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이런 공문이 발송됐으리라 짐작하고 있다. ‘부산항만청에서 비교적 저렴하고 여행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여객선 여행을 권장한다고 하니 각 학교에서 수학여행을 계획할 때 참고 해달라’는 내용이다. 공문에는 부산 발뿐 아닌 인천, 완도, 목포 등 모든 제주 노선과 전국 여객선사의 연락처가 수록돼있다. 우 박사는 “부산_제주를 포함해 제주로 향하는 모든 연안 여객선 이용의 활성화를 염두에 둔 공문”이라고 풀이했다.
공문이 발송된 시점은 여객선 이용객이 점점 줄어 업계가 고전 중이던 때다. 우 박사가 공개한 한국해운조합의 연안해운통계연보를 보면 2009년 1,486만여명으로 2003년 이래 최고치였던 여객수송 인원은 점점 감소 중이었다. 우 박사는 “공문은 결국 페리호 업계의 이익 보전과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되던 크루즈산업 육성 방안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의심된다”고 말했다. 실제 2012년에는 연간 여객수송 인원이 다시 증가한다.
이런 배경을 좇게 된 건 경제학자로서 그의 습성 덕이다. “단원고는 선박여행을 택한 이유 중 하나로 ‘저렴한 비용’을 댔다. 뱃삯이 비행기삯보다 싸고 숙박비도 하루치를 아낄 수 있다는 거다. 하지만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봐도 납득이 안됐다. 저가항공이 널려있고 대규모 인원이라 숙박비도 얼마든 줄일 수 있다. 그런데 왜?” 이 때문에 그는 다른 고려사항이 없었는지를 뒤졌고 공문을 손에 넣었다.
책을 풀어나가는 열쇳말도 여기서 출발한다. 그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연안 여객선업의 위기를 살리려 학생을 동원한다는 발상이 어떻게 가능한가. 돈을 벌어 교육에 써야지 돈을 버는 데 교육을 이용한 것 아닌가.” 게다가 학생과 학부모들이 낸 33만원에 ‘안전 비용’은 없었다. 결국 교육도, 학생들의 생명도, 나아가 이 나라의 미래까지 이 돈에 저당 잡힌 꼴이다.
세월호 참사가 난 지 24일로 100일째, 환경은 바뀐 게 없다. 인천_제주 여객선 운항은 잠정 중단됐지만 위험 요소는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우 박사는 “배에서 시작된 사고라면 안전한 배 그리고 배를 안전하게 운항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데서 대책이 시작돼야 할텐데, 정부는 손을 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대로라면 다시 배가 뜬들 사고가 또 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재난 대응능력도, 권한도 없는 비정규직 선장이 다시 배에 오를 것이다. 우 박사가 운항 시스템의 대안을 찾는 논의가 시급하다고 주장하는 건 그래서다.
“여러 여건상 연안 여객업은 전망이 밝지 않다. 그렇다고 없앨 수는 없다. 거주지 등의 이유로 꼭 필요한 이들이 있어서다. 그렇다면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공기업을 만들어 운영하는 공영제 같은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성공한다면 여객선에서 시작해 다른 교통수단으로 확대할 수 있다.”
이미 전남 신안군이 버스를 완전 공영제로 운영 중이다. 버스 기사는 무기계약직 공무원이다. 1,004개의 섬(이중 유인도는 72개)으로 이뤄진 신안군은 배도 배지만, 부두를 오가는 버스 운행이 주민들에게 필수적인 곳이다. 해외에선 일본, 캐나다, 스코틀랜드, 덴마크, 노르웨이가 연안 여객선 공영제를 시행하고 있다.
우 박사는 “안전한 배를 위한 제도 개선을 하지 않고, 교육을 경제 활성화의 수단 정도로 여기는 가치가 변화하지 않는 한 우리는 이 위험한 배에서 내릴 수 없다”고 말했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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