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예고돼 제도 도입을 위한 준비가 멀쩡히 진행되다가 돌연한 반대론에 휘청거리는 정책이 적잖다. 특별한 사정의 변화가 있었다면 정책 변화를 고려해 마땅하다. 그게 아니라면 특정 이익집단의 주장에 근간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국가정책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약화하는 것은 물론이고, 국제사회의 비웃음까지 사게 된다. 내년 시행을 앞둔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에 대한 반발이 그렇다.
배출권 거래제는 기업별로 온실가스 배출허용량을 정한 뒤 이보다 많이 배출한 기업은 허용량보다 적게 배출한 기업의 배출권을 사들이도록 하는 제도다. 한국은 2009년 12월 코펜하겐에서 열린 제15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2020년의 국가 온실가스 총배출량을 배출 전망치(BAU) 대비 30%까지 줄이겠다고 공약했고, 이를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 시행령 25조에 명시했다. 2012년 ‘온실가스 배출권 할당과 거래에 관한 법률’제정 이래 환경부를 중심으로 유럽의 온실가스 감축 선진국을 본받아 ‘배출권 시장’을 준비해 왔다.
문제는 ‘환경규제’ 색채를 띨 수밖에 없는 배출권 거래제가 기업에 비용으로 전가된다는 점이다. 재계는 1차 계획기간(2015~2017년)의 배출허용 총량 16억4,000만톤(이산화탄소 환산상당량)이 그대로 유지되면 기간 중 기업의 추가 부담이 28조원을 넘을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그런 부담을 새로 지면, 투자의욕이 쇠퇴하고 국제경쟁력을 좀먹을 것이라는 엄포도 잊지 않는다. 또한 미국과 중국 등 대표적 온실가스 배출국이 소극적 자세를 보이는 마당에 우리가 먼저 배출권 거래제 시행에 나서는 것은 국익을 크게 해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배출권 거래제가 기업에 부담을 주리란 점은 분명하다. 다만 재계의 추가부담 추산은 ‘1톤=10만원’의 가격을 전제, 정부가 예상하는 시장가격의 10배에 이른다. 시장가격이 1만원을 넘으면 정부보유 배출 물량을 푸는 등의 보완책으로 얼마든지 대응할 만하다. 미국과 중국의 태도에 대한 재계의 해석도 지나치게 일방적이다. 적극적으로 온실가스 저감 시설투자를 해온 기업에는 배출권 거래제로 새로운 이익을 누릴 수도 있다. 배출권 거래제가 새로운 산업과 시장을 창출하는 효과가 있다는 점도 유럽에서 확인되고 있다. 어느 정도 시장환경의 긴장은 생존을 위한 기업의 노력을 촉진, 궁극적으로 경쟁력을 높인다. 현실과의 정합을 위한 보완은 필요하나 시행을 미룰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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