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소통에 나섰다는 소식이다. 국민이나 여야 정치권은 물론 정부 부처와 청와대 참모들과도 소통하지 않아 ‘불통대통령’이라 불리던 터에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청와대 비서실의 수석비서관들에게 차례로 대면보고를 받고 최근에는 정홍원 국무총리를 3차례나 독대하며 스킨십을 강화하고 있다니 대통령의 국정운영 스타일 변화까지 기대해 볼 일이다.
박 대통령의 ‘불통 취미’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증언도 없지 않지만 취임 이후 특히 자심했다. 취임 첫해 국정원 사건과 NLL논란으로 온 나라가 소용돌이 칠 때 정치권과 소통에 나서라는 빗발치는 요구에도 박 대통령은 오불관언이었다. 추석 직전에야 여야 대표와 3자회동에 나섰지만 여전히 야당과 거리를 좁히지 못했다. 올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처음으로 기자들과 일문일답을 한 것을 제외하면 국민과 직간접 대화에 나선 기억도 없다.
박 대통령이 정치권이나 국민과 통하지 않는 것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자신의 참모들과 직접 스킨십을 즐기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정부 부처의 장차관은 물론 청와대 참모진들도 대통령을 직접 만나 대면보고할 기회가 없다는 게 그 동안 청와대 주변의 불만이었다.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조차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하지 않고 김기춘 비서실장을 통해 간접보고하는 게 관행”이라는 볼멘 소리도 종종 들렸다. 박 대통령을 독대할 수 있는 유일한 참모는 김 비서실장이었다는 증언이다.
박 대통령이 그 동안 어떤 이유로 소통을 외면하고 마음의 문을 꽁꽁 닫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있다. 대통령을 반대하는 쪽에서는 ‘얼음공주’라는 별명에서 유추할 수 있는 차가운 성격이나 경험 부족 등을 거론하고, 지지하는 쪽에서는 절제와 겸손 등의 표현으로 양해를 구한다. 하지만 이보다는 불행한 ‘가족사’가 정설로 돼 있다. 박 대통령을 오랫동안 접한 인사들은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를 적과 참모의 흉탄에 보낸 박 대통령이 누구를 믿고 의지하려 하겠느냐”는 이유를 주로 거론한다. 2인자를 두지 않는 박 대통령의 스타일도 같은 이치로 설명되곤 한다.
언뜻 이해가 가면서도 박 대통령이 개인적 비극을 국정운영 스타일로 연결시킨다는 데는 동의할 수 없다. 일부 리더십 연구자들은 박 대통령이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직후 정치에 입문한 것을 들어 “개인적 고통을 국가적 불행과 동일시하는 박 대통령이 IMF로 고통 받는 국민을 외면할 수 없어 정치에 뛰어들었다”고 두둔하기도 하지만 개인적 비극이 마음의 문을 닫는 계기가 됐다면 이는 또 다른 문제다.
특히 박 대통령의 청와대 관저생활을 떠올리면 안타깝기도 하고 걱정도 된다. 박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청와대 관저로 퇴청한 뒤에도 보고서에 파묻혀 지내는 일상’을 설명하면서 “개인 일 따로 없고 국정 따로 있지 않고, 자나 깨나 그 생각을 하고 거기서 즐거움과 보람을 찾는다”고 밝혔지만 그야말로 ‘숨 막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국정 최종 책임자로서 대통령의 일과는 누구의 그것에 견줄 수 없을 정도의 막중한 스트레스와 결단의 연속인데 퇴근 이후에도 부담을 고스란히 이어간다는 것이 과연 가능하기나 할까 하는 의구심이 먼저 든다. 세상과 단절한 채 고독한 결단을 내리는 모습이 경외스럽게 비칠 수도 있겠지만 마음의 문을 닫은 결정이 자칫 독선과 독단이 되지 않을까도 걱정된다.
이전 대통령들도 청와대 관저를 업무의 연속선에서 활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역대 대통령들은 참모들을 관저로 불러 오찬이나 만찬을 곁들여 국정의 ‘나머지 숙제’를 했다. 세상과 단절한 채 고독한 결단을 내리는 박 대통령의 관저생활과는 애초부터 목적이 달랐을 수 있다.
마침 박 대통령이 소통을 시작했다고 하니 마지막 닫힌 공간까지도 열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통령 스스로 열어젖히지 못한다면 주변의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다. 최근 만난 정치권 관계자들은 조윤선 정무수석의 역할을 주목했다. 같은 여성의 감성으로 접근한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것 같다.
김정곤 정치부장 jk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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