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둔 밤 마음에 잠겨 역사에 어둠 짙었을 때에 계명성 동쪽에 밝아 이 나라 여명이 왔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빛 속에 새롭다. 이 빛 삶 속에 얽혀 이 땅에 생명탑 놓아 간다…”(찬송가 582장)
21일 저녁 서울 종로 5가 기독교회관 2층 강당에서 300여명이 모여 찬송가를 합창했다. 1974년 유신을 반대하는 민주화 운동이었던 ‘민청학련 사건’의 주역 정상복 목사의 고희 기념문집 ‘기쁨과 고난의 길 순례자’ 출판을 기념하는 잔치였고, 40여년간 민주화 운동과 교회갱신운동에 전력해온 정 목사를 기리는 자리였다.
정 목사는 1974년 4월 박정희 정권이 볼온세력의 조종을 받아 반국가단체를 조직하고 국가를 전복하려 했다는 혐의로 180여명이 구속 기소된 공안사건인 이른바 ‘민청학련사건’의 피해자다. 정 목사는 유신체제와 긴급조치를 반대하는 혐의로 체포 구금돼 비상군법회의에서 징역 20년형, 자격정지 15년형을 선고 받은 뒤 복역하다 이듬해 2월 석방됐다. 민청학련사건은 2010년 9월 36년 만에 무죄 확정됐다.
정 목사는 1979년 10ㆍ26사건 후 전두환 장군이 중심이 된 신군부 세력이 득세하자, “계엄령 철폐와 조속한 민정이양 촉구, 신군부 퇴진” 등을 요구하는 명동 YWCA 위장결혼식 사건에도 참여했다. 이후 미국으로 유학해 목사 안수를 받은 뒤 귀국해 1986년 4월 서울 서초구 방배2동에 순례자교회를 개척했다. 진보적 개신교회 연합기관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정의평화위원장으로도 활동하기도 했다.
이날 출판기념회 설교를 맡은 이계준 연세대 명예교수는 “비록 정 목사가 목회현장을 은퇴하지만 그의 차별화된 정의의식이 우리 민족의 소원인 통일을 이루는 일에 주도적 역할을 다함으로써 그의 소명이 완성되는 날이 속히 오기를 바란다”고 했다.
서광선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축사를 통해 “나이가 들었다고 욕심을 부리는 것을 ‘노욕(老慾)’이라고 부른다”며 “민주 인사, 학생운동가의 훌륭한 이름으로 끝까지 살다가 천당가시기를 바란다”고 축하했다. 서 명예교수는 “신약성서 데살로니가후서의 말처럼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쉬지 말고 기도하면서’ 건강하게 살라”고 축원했다.
민청학련 사건 당시 정 목사와 함께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KSCF)의 간사를 맡았던 안재웅 YMCA 이사장은 “정 목사는 이것저것 눈치를 보지 않는 ‘돌직구’처럼 지금까지 살아왔다”며 고희를 축하했다.
12ㆍ13ㆍ14대 국회의원을 지낸 이철 씨는 “1973년 대학 시절 K회관(기독교회관)에 가면 정상복과 안재웅 선배가 후배들을 너무 따뜻하게 대해주고 커피도 사준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며 “정작 만나게 된 것은 (민청학련사건) 군사법정에서 였다”고 했다. 이 전의원은 그러면서 “당시 군사법정에서 정 목사님은 제 뒷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진짜 배후세력’이었다”며 “과거에도 배후였지만 지금도 앞으로 영원히 배후세력”이라고 말해 좌중에서 웃음이 터졌다.
역시 축사를 한 강신욱 변호사는 “정 목사와 나는 피고인과 변호인을 처음 만났다”며 “당시 군사법정에서 (유신헌법) 이건 법도 아니고 부정이라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강 변호사는 “박정희 대통령은 결국 유신 때문에 망하고 쫓겨났다”고 했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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