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에서 학회가 끝나고 파리를 들러 지난주 돌아왔다. 서울에서는 도저히 엄두를 못 내는 시간을 외국에서는 짬짬이 가질 수 있어 즐겁다. 학회가 열리는 동안은 발표로, 외국 연구자들을 만나는 일들로 정신 없지만 끝나고 나서는 잠시 여유를 가질 수 있다. 이럴 때 그 곳 미술관을 들르는 게 즐거움 중 하나다. 물론 요즈음은 서울에서도 좋은 전시회가 열리지만 서울에서는 도통 시간 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미술에 대해선 완전 젬병이고 관련한 강의나 책 한권 제대로 읽은 적 없다. 그럼에도 언젠가부터 그냥 미술관에 내가 좋아하는 그림 하나를 발견하면 그 앞에서 하염없이 앉아 있곤 한다. 그냥 좋다. 일상생활에서 느끼지 못한 감동을 갖게 된다. 복잡했던 머리가 깨끗해짐을 느낀다.
몇 년 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학회가 끝나고 같이 참여했던 스위스와 캐나다 교수들과 뭉크 미술관을 들렀다. 이들은 10여년 넘는 절친 교수들로 이렇게 1년에 한두번 정도 학회에서야 만나는 사이다. 학회 동안 내내 같이 붙어 다니면서 그간 있었던 엄청난 이야기 보따리를 각자 풀곤 한다. 그때 우리는 뭉크의 그림들을 보면서 나름대로의 심리학적 분석을 붙여 열심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냥 그림을 보는 것과는 다른 즐거움이었다. ‘왜 이런 그림이 나왔을까’하는 화가의 심리를 나름대로 추론하는 버릇이 그 이후 나의 또 다른 습관이 됐다.
어린 시절 엄마와 누나의 죽음을 보고, 아버지와 타인, 특히 여성들과 관계 형성을 제대로 하지 못한 뭉크는 일생 동안 두려움을 느끼며 살았다. 그는 동성 친구와의 우정이나 여성 혹은 타인과의 관계를 맺는 것을 두렵게 여겼다. 불안한 생각들은 그가 주변 환경 속에서 본 것을 과도하게 받아들이게 했다. 즉 관계에 대한 두려움과 환경에 대한 과도한 반응은 그로 하여금 여러 심리적, 정신적 문제와 일상에서의 곤란을 경험하게 했다. 뭉크 스스로도 “내 삶의 두려움과 병은 나에게 필요한 존재다. 불안과 병이 없었다면 나는 키가 없는 선박과 같다”라고 했다. 두려움으로 인해 자신의 삶과 작품들이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인정한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우리는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낀다. 태어나 몇 달 간은 큰 소리에, 이후는 어두움, 귀신 등에 두려움을 느낀다. 그러나 이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발달 현상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 두려움과 불안을 야기하는 위협적인 상황들을 지속적으로 경험하면 장기적으로 영향을 받게 된다. 지속적인 두려움과 불안은 뇌의 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특히 두려움을 포함한 정서를 담당하는 부위에 영향을 준다. 어릴 때 특정 대상이나 사건으로 인해 두려움을 습득하면 일반적인 상황에서도 두려움을 느낄 수 있고, 이것은 이후 불안장애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위협과 안전을 구분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외상을 겪은 아이는 타인의 얼굴 표정을 알아보고 반응하는 데 어려움을 가진다. 상대방이 애매한 얼굴 표정을 지을 때, 그 표정을 부정적으로 해석하게 된다. 이러한 ‘주의 편향’(attention bias)은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상황인데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게 해 자기방어적으로 반응하고 공격적으로 행동하게 한다. 결국 타인과의 건강한 관계를 형성하는 데 악영향을 미치게 되며, 이후 청소년기, 성인기까지 이어질 수 있다.
뭉크는 아버지 또한 까다로운 사람이었다. 어릴 때부터 지옥에 대해, 그 두려움에 대해 알게 했고 처벌 또한 엄격해서 아이들을 처벌할 때 폭력을 휘두르곤 했다. 뭉크가 처벌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이에 대한 억압된 감정을 그대로 그림에 표현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어릴 때 어떤 환경에서 어떤 경험을 하는가는 그 사람의 일생 내내 영향을 미친다. 물론 이를 긍정적으로 극복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한 화가처럼 전 생애를 걸쳐 어둡고 비극적인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물론 뭉크의 두려움의 그림들은 어린 시절의 고통을 재현하고 재표현 함으로써 궁극적으로 그것을 극복하려 했던 시도였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만큼 어린 시절은 우리에게 중요하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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