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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규제 완화가 능사는 아니다

입력
2014.07.2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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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여객선 참사는 우리 사회에 엄청난 충격과 교훈을 던져 주었다. 우리 사회를 지배하던 안전 불감증에 대한 폐단과 문제점을 총체적으로 보여준 인재(人災)라는 지적이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하여 ‘하인리히 법칙’이 주목받고 있다. 큰 재해와 작은 재해, 그리고 사소한 사고의 발생 비율이 1:29:300이라는 것이다. 큰 사고(1)는 우연히 또는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대형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그와 관련된 수많은 경미한 사고(29)와 징후(300)들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을 밝힌 법칙이다.

의약품에 대한 오남용 우려도 하인리히 법칙의 예외는 아닐 듯싶다. 의약품은 ‘양날의 칼’로 비유되듯 국민 생명과 직결되는 효능과 함께 독성으로 인한 부작용을 가지고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일반 공산품은 제품에 문제가 있을 경우 즉시 리콜이 가능하지만 이미 복용해버린 의약품은 원상회복이 불가능하여 누구도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약화사고는 한 번의 복용으로 일어나기도 하지만, 긴 시간 인체에 축적되어 발생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렇듯 의약품 오남용으로 인한 보이지 않는 약화사고와 안전은 누가 보장할 것인가?

문제는 국민건강 증진에 반드시 필요한 안전장치까지 ‘규제’로 바라보는 정부의 시각이다. 규제는 도려내어야 할 ‘암덩어리’라는 대통령 발언이후 정부 부처별로 규제개혁 전담팀을 구성하고 규제 완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규제개혁 과제에 안전상비의약품 판매장소와 품목 확대까지 포함되었다는 소식까지 들리니 ‘좋은 규제’와 ‘나쁜 규제’에 대한 구분 없이 성과주의에 매몰되어 무차별적으로 진행되는 듯한 느낌이다.

안전상비의약품은 약국이 문을 닫는 심야·휴일에 약사의 복약상담보다 환자의 구매 시급성이 더 필요하다는 고려하에 예외적, 한정적으로 24시간 편의점 판매가 허용된 것으로서 해열진통제 5품목, 감기약 2품목, 소화제 4품목, 파스 2품목 등 13품목이 지정되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민들은 24시간 편의점에서 안전상비의약품 판매에 따른 편의성 향상이라는 효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약품은 안전한 사용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 지속적인 안전조치 강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5월 발표한 ‘안전상비의약품 판매 전후 의약품 사용 및 인식변화’ 연구보고서에 의하면 국민 설문조사 결과 제도 정착을 위해 보완해야 할 최우선 과제로서 ‘안전상비의약품 판매자에 대한 안전조치 강화’(39.9%)를 우선으로 꼽고 있다.

정부가 규제 완화차원에서 검토중인 안전상비의약품 판매장소 확대와 품목수 확대는 하위권인 4위(11.4%)와 5위(7.7%)에 그치고 있다.

또한 2013년 7월 서울시와 소비자단체가 공동으로 시행한 안전상비의약품 판매점 현황조사 결과 주성분 과다 함유로 4월 23일자로 판매 중지된 ‘어린이 타이레놀 현탁액’이 즉각 회수되지 못한 편의점이 25.7%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된바 있다.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에 접수된 안전상비의약품의 부작용 건수가 지속적으로 증가 추세에 있는 등 국민건강 보호를 위해 오히려 안전상비의약품 안전관리체계가 더욱 강화되어야 할 상황인 것이다.

무분별한 규제 완화에 앞서 규제의 옥석(玉石)을 가리고, 양면성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가 중요하다. 사회 안전망처럼 ‘좋은 규제’는 규제의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고, 비정상적인 적폐(積弊)처럼 ‘나쁜 규제’는 바로 잡아야 한다.

국민의 건강과 생명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을까? 안전에 관한 규제는 암덩어리가 아니라 사회를 지키는 안전벨트다. 안전상비의약품 판매장소와 품목 확대 검토가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규제 완화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이영민 대한약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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