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거짓말쟁이를 안으려 한 덴 까닭이 있었다. 유진룡 꼴을 더 보기 싫어서였다. 기용할 땐 이념색 옅은 그가 관료답게 정권 편에 설 줄 알았을 터. 영혼을 간직한 줄 모르고.
“김용의 무협소설 ‘소오강호(笑傲江湖)’는 강호의 패권다툼을 비웃는다는 뜻이다. 2006년 당시 유진룡 문화관광부 차관은 청와대 인사 청탁을 폭로한 죄로 경질되면서 “심심풀이로 읽은 ‘소오강호’가 떠오른다”며 “참 재미있는 세상”이라고 직원들에게 e메일을 보냈다. (…) 엘리트 관료 유진룡의 눈에는 한때 나라를 구하겠다며 떨쳐 일어났던 운동권 386이 집권 후 공기업 자리 때문에 “배 째 드릴까요” 소리를 했네, 안 했네 하는 게 가소로웠을 법하다. 자랑할 일은 아니지만 나는 그와 일면식도 없다. 그럼에도 박근혜 정부 2기 내각 인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것이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면직이었다. (…) ‘면직’이란 죽을죄를 지어서 잘렸다는 느낌을 강하게 준다. (…) 그의 죄는 소신과 직언으로 인사권자를 불편하게 한 죄로 요약된다. 자신이 믿는 바를 감추거나 대통령의 국정철학에 맞추기는커녕 정치적 좌고우면 없이, 그것도 대통령 앞에서 발설하는 불충을 서슴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어째서 이 정부에선 내각 총사퇴 같은 ‘쇼’ 한 번 없나, 나는 혼자 개탄했었다. 그런 제안을 한 장관이 있고 그가 바로 유진룡이라는 사실이 면직을 당하고서야 밝혀졌다. (…) 세월호가 침몰한 4월은 유진룡에게도 잔인한 달이었다. 11일 “국민생활체육회 사무총장 인사와 관련해 유정복 전 장관에게서 청탁 전화를 받은 사실이 있느냐”는 야당의 질문에 그는 “(인사청탁) 얘기는 들었는데 동의할 수 없었다”고 말해 버렸다. (…) 여권에서 보면 천기누설이었다. 이보다 사흘 전엔 새정치민주연합 안민석 의원이 “대통령 최측근으로 통하는 정윤회 씨의 딸이 승마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있다”고 국회에서 주장했다. (…) 이 일로 유진룡에게 진작 박혔던 미운털은 빠지지 않는 대못이 됐다는 얘기가 나돈다. (…) 관료사회엔 ‘나중에 책임질 일은 손대지 말자’는 ‘변양호 신드롬’이 있다. 앞으로는 ‘유진룡 신드롬’도 한 자리 차지할 것 같다. 소신을 갖지 말 것, 가져도 말하지 말 것, 특히나 인사나 비선(秘線) 문제에선 절대 윗분의 뜻을 거스르지 말 것.”
-유진룡의 죄, 소오강호(동아일보 기명 칼럼ㆍ김순덕 논설실장) ☞ 전문 보기
“다른 장관들이 잇달아 ‘사고’를 치면서 박근혜 정부의 지지율을 깎아 먹었으나, 유진룡씨는 대과 없이 장관직을 수행했다. 현장 문화인들의 평가도 나쁘지 않았다. 그의 장관 재임 기간 동안 문화부는 도서정가제 도입, 예술인들을 위한 표준계약서 제정 등 문화계 숙원 사업을 해결했다. (…) 새 장관 후보자가 낙마하자 유진룡씨는 정홍원 총리처럼 한동안 유임될 것으로 여겨졌다. 한번 자른 사람을 그대로 두는 것이 민망한 일일 수는 있겠으나, 문화부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이라는 중대사를 코앞에 둔 주무부서다. 장관 자리를 비워둘 상황이 아니다. 그러나 정부는 또 다른 장관 후보자도 발표하지 않은 상태에서 유진룡씨에게 면직 통보를 내렸다. (…) 장관 교체가 단지 ‘분위기 쇄신’ 차원이 아닌 이상에야, 유진룡씨가 정부 최고위층에게 무언가 크게 밉보였을 것이라는 추정은 가능하다. 공무원의 처신은 어렵다. 해당 분야의 전문가로서 소신을 펼쳐야 하지만, 매번 바뀌는 정권의 국정기조를 따르기도 해야 한다. (…) 마찰을 최소화하면서 소신을 펼치는 것이 장관의 일이라고 한다면, 결과적으로 유진룡씨는 실패했다. 하지만 고개를 푹 숙인 채 대통령 말씀을 받아적는 장관들, 그 장관들의 지시를 ‘영혼 없이’ 따르는 공무원들로 가득 찬 관료사회가 건강해 보이지는 않는다. (…) 돌아보면 유진룡씨는 박근혜 정부 내각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박근혜 정부는 완전히 같은 색깔의 사람들로 채워지고 있다.”
-같은 색깔만의 정부(7월 19일자 경향신문 ‘기자칼럼’ㆍ백승찬 문화부 기자) ☞ 전문 보기
정치판은 그들만의 리그다. 힘을 탐내면서도 더러워 피하는 이가 다수다. 고위공직도 기피되긴 마찬가지다. 거꾸로 너무 깨끗해야 해서다. 어쨌든 둘 다 결과는 서비스 질 하락이다.
“정치혐오는 누구에게 가장 큰 이익이 될까? 정치인이다. 대중이 정치에 침을 뱉고 돌아설수록 잠재적 경쟁자의 수는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 이치를 깨달은 정치인들은 정치가 혐오의 대상이 되게끔 애를 쓴다. (…) 어린아이들의 장난 중에 ‘먹을 것에 침 뱉기’가 있다. (…) 이게 바로 정치인들이 즐겨 쓰는 수법이다. 잠재적 경쟁자들에게 “이런데도 정치판에 뛰어들 거야?”라는 신호를 보냄으로써 자신들의 기득권을 영속화하려는 것이다. (…) 최근 일어난 일련의 ‘공천 파동’이 대표적인 사례지만, 한국 정치의 모든 파행은 ‘뿌리 없는 정당’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밑으로부터’라는 말은 아름답지만, 정치혐오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밑’은 존재하지 않는다. (…) 만약 ‘밑’을 만드는 선택을 하겠다면 정치컨설턴트 박성민씨가 제안한 바 있는 ‘서비스 모델’을 도입해야 한다. 정당이 대중의 일상으로 파고들어 무료 법률 자문에서부터 인문학 강좌에 이르기까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정당을 친근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 정치인들이 잠재적 경쟁자의 수를 폭증시킬 위험 때문에 이 방식을 도입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내내 그들이 연출하는 ‘먹을 것에 침 뱉기’를 구경하면서 따라서 침을 뱉는 ‘침 뱉기 경쟁’만 벌이게 될 것이다.”
-침 뱉기 경쟁(한겨레 기명 칼럼ㆍ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전문 보기
“인준청문회 잔혹사라면 미국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인준청문회가 일견 덜 가혹해 보이는 건 사전 검증에 훨씬 더 많은 공을 들이기 때문이다. (…) 한국도 비슷한 고민을 하지만 미국서도 전문가들은 엄격한 인준청문회의 부작용으로 인재들의 공직 기피증을 든다. (…) 결과적으로 워싱턴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 이미 인준청문회를 통과한 경험이 있어 다시 털어도 먼지 날 우려가 없는 사람들이 돌아가며 정부 요직을 맡는 결과를 낳게 된다. 국민 입장에선 손해도 이런 손해가 없다. 결국 매일 그 얼굴이 그 얼굴, 그 아이디어가 그 아이디어인 사람들로 정부를 채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인사청문회는 장점이 더 많은 제도이다. (…) 공직자의 자격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하는 파급 효과의 힘, 그것이 인사청문회 피로 증후군에도 불구하고 엄격한 인사청문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인사청문회, 더 엄격하게 그러나 좀 세련되게(7월 19일자 조선일보 ‘강인선의 터치! 코리아’ㆍ주말뉴스부장) ☞ 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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