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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노바 박인수 1심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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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노바 박인수 1심 무죄

입력
2014.07.21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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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카사노바 박인수가 1955년 7월 22일 서울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판 카사노바 박인수가 1955년 7월 22일 서울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55년의 일이니 무려 60여 년 전 사건이다.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어수선한 시절이었다. 한국전쟁과 함께 불어 닥친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는 필연적으로 여성의 노동참여를 이끌었지만 그것이 곧 여성의 사회적 지위향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50년대의 여성들이 생각보다 상당히 개방적이고 활동적이었다는 사실은 우리나라 최초의 베스트셀러이자 통속소설로 인정받는 정비석의 소설 ‘자유부인’에서 잘 드러난다. 54년 1월부터 8월까지 서울신문에 연재됐던 ‘자유부인’은 대학교수의 부인이 사교모임에서 제자와 춤바람이 나는 등 일상에서의 일탈을 꿈꾸다 남편의 이해와 아량으로 결국 가정으로 돌아온다는 내용으로, 당시 엄청난 인기와 함께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소설보다 더 흥미롭고 자극적인 일이 현실에서 벌어졌다. 이른바 ‘한국판 카사노바’ 박인수 사건이다.

1955년 7월 22일 오전 10시 20분, 서울지방법원 대법정은 방청객들과 기자들로 초만원을 이뤘다. 여대생 2명에 의해‘혼인빙자간음죄’로 고발된 해군장교출신 청년 박인수의 재판에 온 국민의 관심이 쏠렸기 때문이다. 말쑥한 얼굴에 흰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붙인 26세 청년 박인수가 법정에 들어서자 재판장 권순영판사가 판결문을 낭독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는 희대의 판결문이다.

“피고 박인수의 ‘혼인빙자간음죄’는 무죄로 한다. 법은 정숙한 여인의 건전하고 순결한 정조만을 보호할 수 있는 것을 밝혀두는 바이다”

재판정은 발칵 뒤집혔다. 보호가치가 있는 ‘정조’란 무엇이며 어떻게 법이 여성의 정조를 보호하는지 의견이 분분했다. 극히 반 여성적이라는 판결이 주류를 이뤘지만 성적 자기결정권을 존중한 명 판결이라 해석한 이도 있었다.

박인수는 해군 대위로 한국전쟁에 복무하던 중 변심한 애인으로 인해 큰 상처를 받고 방황하다 불명예제대를 당하고 말았다. 앙심을 품은 박은 사회에 나가 색다른 복수를 도모했고 군 장교를 사칭하며 국일관 낙원장 등 고급 댄스 홀을 드나들었다. 그와 춤을 추던 여성들은 훤칠한 용모와 해군 장교라는 타이틀에 쉽게 무너졌고 2차는 자연스레 여관으로 이어졌다. 54년부터 1년 동안 그에게 농락당한 미혼여성들이 무려 70여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박인수는 재판정에서 무죄를 주장했다. 대부분이 명문대 재학생이었으며 자신이 상대한 여성 중 처녀는 미용사 한 명뿐이기에 ‘혼인빙자’는 성립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이날‘공무원사칭’에 대해서만 2만 환의 판결을 받고 풀려난 그는 이후 항소심과 대법원판결에서는 유죄를 선고 받고 결국 1년 여의 옥고를 치렀다.

출감 후 댄스 홀에서 만난 여자와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고 전해지는데 철저한 은둔생활로 현재 그의 행적은 알 수가 없다.

손용석기자 st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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