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평가는 엇갈린다. 냉정ㆍ비겁은 한 몸이기 일쑤다. 배워야 할 건 의심이다. 대상엔 자타가 없다. 흐릿한 태도가 수반된다. 때로 리더는 통찰을 위해 솔선 대신 관망을 택한다.
“미국 정부 안팎 외교 전문가들은 중국이 한국에 접근하는 이유는 한ㆍ미 동맹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한ㆍ미 동맹이 약화되면 중국은 몇 백년 전처럼 한국을 중국의 변방(邊方) 국가로 취급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국제관계 비중의 우선순위를 혼동하지 말라는 한국을 향한 경고성 귀띔이다. (…) 안전 항해의 출발은 지금 항해하는 이 바다를 확실히 모른다는 걸 아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만큼 일본과 중국과 미국에 빠삭한 처지가 아니다. (…) 상식만으론 다른 국가의 의도와 행동을 정확히 읽고 예측할 수는 없다. 상식이 고정관념으로 바뀌면 오히려 오판(誤判)을 낳는다. (…) 미국을 ‘의심하면서도 미국과 협력’하고 일본을 ‘경계하면서도 일본과 대화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이승만이라면 오늘 동북아를 어떻게 헤쳐갔을까. 일본은 몇 년 동안 외면하며 방치하고 미국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고 중국 연설 외교에 귀를 솔깃해했을까.”
-李承晩이라면 東北亞 어떻게 헤쳐갔을까(조선일보 기명 칼럼ㆍ강천석 논설고문) ☞ 전문 보기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후 많이 회자됐던 얘기 중의 하나가 인사(人事)다. (…) 영주 휘하에 젊은 걸인이 부하를 자청하여 들어왔다. 당시 영주는 부하에게 의식주를 제공하고, 부하는 영주에게 유사시 목숨을 맡겼다. (…) 헌데 이 걸인은 무사수업엔 도통 관심이 없었다. 단체훈련에 빠지고 개인수련에도 소홀했다. (…) 동료 무사들의 짜증이 폭발했다. (…) 영주가 그를 불러 최후진술을 요구했다. “저는 장(長)이 되고자 합니다. 지금부터 무술을 연마하면 침식을 전폐하더라도 동료들을 앞지를 수 없습니다. 더구나 무예보다 중요한 것은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 일입니다. 장(長)이 되면 무술에 능한 무사들은 얼마든지 충원할 수 있습니다. 주군이 만나는 사람들의 뒷모습에서 적과 동지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 외국 상인들과 그들이 거래하는 물품을 눈여겨보면 현재와 미래의 주변국가 정세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 미천한 신분으로 일본열도의 우두머리가 됐고, 중국까지 통일하겠다며 조선을 침략했던 풍신수길의 젊은 시절 일화라고 한다. (…) 풍신수길의 일화가 떠올랐던 것은 장관들의 인사청문회를 보면서였다. 세세한 분야에 대한 해박한 지식, 빈틈없고 정확한 기억력, 구석구석을 섭렵하는 섬세한 재능이 장(長)의 필수요건은 아니다. 갈등조율과 관계조정, 전후좌우 과거미래에 대한 안목과 비전이 더욱 소중한 자질이니 그것을 청문해야 한다.”
-인사의 지혜, 장(長)의 요건(한국일보 기명 칼럼ㆍ정병진 주필) ☞ 전문 보기
청문회가 노리는 게 각료 비토는 아니다. 결과가 그럴 뿐이다. 반복되는 세레모니 속에 출항은 부지하세월이다. 뭐가 나아지는 것도 아니다. 불량품만 꼬리를 문다. 고를 것도 없다.
“대부분의 조직은 중요하고 급한 일과 중요하지 않지만 급한 일을 처리하느라 바쁘다. 그래서 좋은 리더의 자질에는 장기적인 안목과 통찰력으로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일을 챙길 줄 아는 능력이 포함된다. ‘중요하고 급한 일’에 대한 시의적절한 판단과 처리는 기본이다. 2기 내각을 이끌어 나갈 고위직 임명은 당연히 중요하고 급한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좋은 리더라면 사안에 걸맞은 판단을 내리고 국민들의 동의를 구해야 옳다. 하지만 왜, 지금 이 시점에서, 이 사람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이 내려졌는지 국민은 알지 못했다. 국민들은 그저 중요하고 급한 일이 짜증스러운 사안으로 바뀌는 과정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 “어떻게 골라도 매번 그런 사람만 고르냐”고 탄식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찌 알 것인가? 인사청문회 과정 중에 쏟아진 언론 보도만 해도 몇 건인가? 이 사안을 취재하고 보도한 사람들, 그 언론 보도를 읽은 사람들의 시간, 이 글을 쓰느라 관련 자료를 찾아보며 새삼 화나는 마음을 누르는 나 같은 사람의 시간까지 합치면 이 모든 과정에서 발생한 사회적 손실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어떻게 고르고 골라도 이런 사람만 고를까(동아일보 ‘동아광장’ㆍ정지은 사회평론가) ☞ 전문 보기
“세월호 사건의 책임자는 누구인가. (…) 이 비극의 원인은? (…) 해경의 대응부터 ‘관피아’, 신자유주의 체제의 필연, “우리 모두의 잘못”… 이런 식의 논의라면 원인을 많이 나열할수록 답은 완벽해진다. (…) 실력은 없고 불성실한데다 약자에게 함부로 하는 타입의 “출세에 미친” 인재(人災)들이 인재(人才) 행세를 하고 각자 분야에서 활약하다가 공적인 문제가 될 때(예를 들어 청문회가 열릴 때) 그들의 태도. 자기 인식 불능과 뻔뻔스러움, 이것이 통하지 않을 때 피해자를 협박하고 미디어엔 눈물을 보인다. 절망적인 것은 개인차도 없다는 사실이다. 이들이 한국 사회 자체고, 내가 생각하는 ‘세월호의 원인’이다. (…) 성공을 추구하는 이들이 그 과정에서 타인에게 “상처 입히는 기쁨”(43쪽- 후지타 쇼조의 ‘전체주의의 시대경험’(기자 주))은 ‘세월호’ 분석에 참고가 된다. ‘세월호’는 이 기쁨을 맘껏 휘두르는 이들과 이런 능력을 부러워하는 사람들 때문 아닐까. (…) 사족-범법 행위를 했으면 청문회 등장은 고사하고 형사 처벌을 받으면 그만이다. 사과도 뉴스도 매우 이상한 사회다.”
-상처 입히는 기쁨(한겨레 ‘정희진의 어떤 메모’ㆍ여성학 강사) ☞ 전문 보기
* ‘칼럼으로 한국 읽기’ 전편(全篇)은 한국일보닷컴 ‘이슈/기획’ 코너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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