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승객 298명 전원이 숨진 말레이시아항공 보잉777 여객기 피격은 여러모로 1983년 구 소련 사할린 상공에서 발생한 대한항공(KAL) KE-007기 격추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이번 사고처럼 냉전의 대치구도 속에 애꿎게 민간 항공기가 희생되면서 진상 규명과 보상 등에 난항을 겪었다.
1983년 9월 1일 미국 뉴욕을 출발해 당일 저녁 서울에 도착 예정이었던 KE-007편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소련 영공으로 진입했다가 소련 전투기가 쏜 미사일에 격추됐다. 해상에 추락해 탑승자(269명)의 시신 한 구도 수습할 수 없었다.
KAL기 사건의 진실은 3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베일에 싸여 있다. 사건 발생 10년이 지난 93년 6월에야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발표한 최종 보고서는 조종사의 과실을 인정했을 뿐 항공기가 왜 소련 영공으로 들어갔는지, 전투기 조종사가 오인 사격을 한 원인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전혀 밝히지 않았다. 소련의 협조 없이 정황에 근거해 진행된 반쪽 조사였기 때문이다. 소련 정부는 사건 발생 8일 만에 격추 사실을 공식 인정했으나 “해당 항공기가 착륙 유도에 불응해 취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답변만 되뇌었다.
당연히 배상이나 피해 복구가 제대로 될 리 없었다. 우리 정부는 사건 직후 미국을 통해 정당한 배상을 요구하는 외교문서를 전달하려 했지만, 소련은 국교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소련 정부는 사과는커녕 조종사인 겐나디 오시포비치에게 훈장을 수여하고 중령으로 승진시키
기까지 했다. 러시아 정부는 92년 한국과 수교를 맺은 이후에도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결국 유족에 대한 보상 조치는 모두 대한항공이 맡았다. 국가 차원의 지원은 없었다. 희생자 유족 155명은 그 해 말까지 대한항공으로부터 최고 10만달러의 보상금을 지급받았고, 일부는 별도 소송을 제기해 65만~200만달러 보상에 합의했다. 여객기 조종사의 과실을 명기한 ICAO의 조사 결과서가 나온 뒤 유족 200명이 정신적 피해 등에 대해 대한항공을 상대로 손해 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지만, 손배 채권 시효(2년)가 지났다는 이유로 패소했다.
KAL007 유족회 부회장을 지낸 유인학 전 의원은 “국민 수백명이 몰살된 사건에 30년 넘게 눈을 감고 있는 것은 국가의 책무를 져버린 행위”라며 “적어도 러시아의 사과는 받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양진하기자 real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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