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수입량 급증에 더 못 미뤄" vs "식량주권 포기 행위"
정부가 18일 쌀시장 전면 개방(관세화)을 공식 선언했지만 반대 목소리는 여전하다. 쌀 관세화가 정말 불가피한 것이냐는 근원적 의문부터 절차상 쟁점까지 정부와 관세화 반대론자들의 입장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쌀 관세화는 불가피한가
정부는 쌀 관세화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필리핀처럼 일시적 의무면제(웨이버)를 신청하게 되면 의무수입물량(MMA)이 올해 40만9,000톤에서 최소 82만톤으로 2배 이상 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국내 소비 물량의 20%에 달해 국내 쌀 산업과 재정에 큰 부담이 된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반면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등은 관세화도 하지 않고, MMA도 늘리지 않는 현상유지(Stand still)가 가능하다고 본다. 2004년 쌀협상 당시 협정문에 2015년부터 어떻게 할 것인지 명시적으로 규정돼 있지 않다는 점,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이 장기 표류하면서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들이 2000~2004년 이후 추가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는 점 등이 근거다. 현상유지가 결과적으로 WTO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해도, 정부가 처음부터 관세화로 방향을 정해놓고 최선의 시나리오인 현상유지를 시도조차 해보지 않는 것은 식량주권 포기 행위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정부는 현상유지 방안도 검토했지만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도출됐다고 밝혔다. 또 다른 농민단체인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한농연) 등도 MMA를 늘리는 것보다 고율관세를 부과해 추가 쌀 수입을 막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외국의 추가 관세 인하 요구 막을 수 있나
정부 주장대로 300~500%의 고율 관세를 매긴다고 해도 그 효력이 영원히 지속되리란 보장은 없다. 자유무역협정(FTA)이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에서 상대국들이 쌀 관세율 추가 인하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정부는 향후 무역협정에서 쌀은 양허(관세 인하)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거듭 밝혔다.
한농연은 이런 입장 표명으로는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한농연 김광천 대외협력실장은 “적어도 향후 추가 관세 인하는 없다는 내용으로 대국민 약속이나 선언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농은 아예 한번 정해진 고율 관세에 법적 구속력을 부여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반면 정부는 특정 상품의 관세율에 대해 법적 구속력을 부여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부정적이다.
농가 보호 대책 및 국회 동의
정부는 ▦쌀 수입보험제도 도입 ▦쌀 재해보험 보장수준 현실화 ▦전업농 및 들녘경영체 육성을 통한 규모의 경제화 등 쌀 관세화 이후 농가 보호 대책을 마련하는 중이다. 하지만 쌀 농가들은 농민들의 불안함을 덜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입장이다. 한농연은 농업정책금리 인하나 쌀 산업 인프라 지원 확대 등 구체적인 농가소득 안정화 방안을 추가로 요구하고 있다.
국회 동의 여부도 쟁점이다. 전농 등은 쌀 관세화 통보 전 국회의 사전 비준 동의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정부는 관세화는 새로운 조약이 아닌, 이미 체결된 조약의 의무가 지금 발효되는 것에 불과해 국회 비준 동의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또 비준 동의가 필요하다고 해도 WTO의 검증절차가 마무리된 후 확정된 수정양허표가 비준 동의 대상인 ‘국제 조약’에 해당하기 때문에 검증절차 후 국회의 비준 동의를 받으면 된다고 보고 있다.
관세화 통보 시점
WTO에 통보하는 시점에 대해 정부는 올해 9월말로 판단하고 있지만 일부 통상법 전문가들은 WTO관세 양허표 수정 개정 절차 제1항을 근거로 반박한다. 1항은 ‘양허표 변경안은 해당 행위(The action)가 완료된 이후 3개월 이내 사무총장에게 전달된다’고 규정한다. 1월 1일 쌀 관세화가 완료된 후 3개월 이내 통보하면 된다는 것이다.
반면 정부는 같은 규정 3항의 ‘수정양허표는 3개월 이내 체약당사자(회원국)의 반대가 제기되지 않으면 인증본이 된다’는 것을 근거로 관세화 최소 3개월 전에 수정양허표를 제출해 이의 제기 기회를 줘야 한다고 보고 있다. 앞서 관세화 결정을 한 일본과 대만도 관세화 시점 3개월 전에 통보했다.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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