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당국, 도청 자료 2건 공개 "전쟁상황 어쩔 방법 없다" 내용도
반군·러시아는 극구 부인 "푸틴 전용기 노린 소행" 주장도
300명 가까운 희생자가 발생한 여객기 피격 사건은 누구 소행일까. 본격 조사가 이뤄지지는 않은 상태지만, 드러난 정황으로만 보면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을 장악한 친(親) 러시아 반군 소행일 가능성이 높다.
친러 반군을 의심케 하는 결정적 근거는 우크라이나 정보 당국이 제시한 2건의 도청자료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도청 자료에는 ‘반군 부대가 미사일 공격을 했다’는 반군 대원과 러시아 군 관계자의 대화가 담겼다.
첫 번째 자료에서는 ‘대령’으로 불리는 반군 지도자가 17일 오후 4시33분께 “비행기가 페트로파블로프스카야 광산 인근에서 격추됐으며, 첫 번째 발견된 희생자는 민간인 여성”이라고 보고했다. 하지만 1시간 만에 격추 항공기가 민간 여객기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는 욕설을 내뱉은 뒤 “이 항공기는 거의 100% 민간 항공기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자료에서도 반군 소속 대원이 “도대체 말레이시아 항공기가 우크라이나에서 뭘 하고 있었던 것인가”라고 반문하자, 상대방이 “어쩔 방법이 없다. 지금은 전쟁상황”이라고 응답했다.
미국 정보당국도 공식 확인하지는 않았으나, 반군이 러시아제 부크 지대공 미사일을 발사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미사일은 러시아가 냉전시대 서방의 순항미사일과 고고도 전폭기 요격용으로 개발한 것으로, 사거리가 3㎞내외에 불과한 이동식 지대공 미사일과는 달리 반경 140㎞안에서 최대 25㎞ 고도의 물체를 요격할 수 있다. 27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호주의 토니 애벗 총리가 “러시아 지원을 받는 반군에 의해 격추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힌 것도 미국으로부터 비공식 연락을 받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물론 반군과 러시아는 극구 부인하고 있다. 반군들은 10㎞ 고도의 항공기를 격추할 만한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또 “실제로 그런 미사일을 사용했더라면 무식하게 통화내용에 나온 것과 같은 대화도 나누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러시아에서는 사고기가 피격된 직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탄 전용기도 비슷한 항로를 비행한 점을 근거로, 우크라이나가 푸틴 대통령을 노렸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도 흘러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누구 소행인지를 끝내 밝혀내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사고 현장을 장악하고 있는 친러 반군이 블랙박스를 조작하거나 결정적 증거를 없앨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러시아 인테르팍스 통신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반군이 이미 사고기에서 블랙박스를 회수, 러시아 연방항공위원회(IAC)에 분석을 의뢰했다. 미국 정부 관계자도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사고 현장이 온전히 보전돼야 한다”며 반군과 러시아 측의 현장 조작 가능성을 경계하고 나섰다.
한편 여객기 피격으로 우크라이나 사태는 더욱 꼬여들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와 반군이 동의하지 않더라도 미국과 서방이 반군 소행으로 결론내면 강력한 후속 제재에 나설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경우 푸틴 대통령도 초강수로 맞설 것으로 보여 양 진영의 대치는 최악 상황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치열했던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반군의 교전은 수그러들 것으로 보인다. 현 상황에서 어느 쪽도 전투 행위를 강행하려 들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친러 반군 측이 이번 사건 조사를 위해 3일간 임시 휴전을 제의한 것도 이런 전망을 뒷받침하고 있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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