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나를 헤아리면 비판이 되지만
내가 나를 헤아리면 성찰이 되지
남이 터트려 주면 프라이감이 되지만
나 스스로 터뜨리면 병아리가 되지
- 유안진 ‘계란을 생각하며’의 일부 -
평생을 성찰의 무게에 짓눌리며 산 이가 있다. 남이 나를 헤아리기 전에 내가 나를 헤아리면 비판 받을 일이 없을 거란 속셈이었다. 그는 내장까지 청소할 기세로 매일 처절하게 스스로를 돌아봤다. 위액에 이어 쓸개즙까지 올려 뱉는 쓰디쓴 나날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는 생각한다. 내면에 조명을 비추고 죄의 생김새를 확인하고 하나하나 이름을 붙여 부르는 것만으로 왜 구원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위 구절은 유안진 시인의 ‘계란을 생각하며’의 일부다. 소설 ‘데미안’의 주제와 라면 속 계란이 하나로 합쳐지는 묘한 시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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