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과 쌀람: 장벽에 가로막힌 평화
유재현 지음 / 창비 발행(2008)ㆍ310쪽ㆍ1만8,000원
이스라엘-善 아랍-惡 이분법적 시선, 영화 '영광의 탈출' 등 미디어 영향 커
2006년 이스라엘 국방 예산 72억弗, 이집트 등 주변 4개국과 비슷한 수준
팔 자치정부-신흥 자본가 부패 등 한쪽편 안드는 저자의 냉정한 시각도
지난해 영국 서섹스대학 학생회는 온라인 투표로 학생들에게 정치색 짙은 질문을 던졌다. 학교 청소를 대행해온 다국적회사 베올리아와의 계약 연장 여부를 묻는 투표였다. 베올리아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지에 이스라엘인 정착촌을 짓는 사업에 참여하고 있었다. 부도덕한 사업으로 돈을 버는 기업에 청소 대행을 또 다시 맡길 수 없다는 일부 학생들의 주장을 학생회가 받아들여 투표가 이뤄졌다. 계약 연장에 반대하지 않는 의견이 58%로 나와 베올리아는 서섹스대학과 계속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한 대학 안의 해프닝으로 비칠 수도 있는 이 온라인 투표는 이스라엘에 대한 서구의 반감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다.
한국에서는 곧잘 이스라엘은 선으로, 팔레스타인을 비롯해 이스라엘을 둘러싼 아랍 국가는 악으로 여겨진다. 이스라엘의 600만 인구가 1억명이 넘는 아랍 국가 국민들에게 포위돼 불안한 삶을 이어간다는 동정적인 시선도 지배적이다. 소설가 유재현의 ‘샬롬과 쌀람: 장벽에 가로막힌 평화’는 한국인들의 이런 고정관념을 무너뜨린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을 골고루 둘러보고 기록한 기행문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과거와 현재를 전하며 미래를 예감한다. 국내 서적으로는 드물게 저자가 현장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뿌리깊은 갈등을 채록했다.
한국인의 이스라엘을 향한 유별난 호의의 근원은 무엇일까. 미디어에 의해 형성된 이미지가 적지 않게 작용했다. 영화 ‘영광의 탈출’이 대표적이다. 1947년 프랑스 마르세유 항을 출발해 팔레스타인으로 향하던 워필드호의 유대인 승객 4,515명은 영국 해군에 의해 프랑스로 되돌려 보내진다. 소설을 밑그림으로 삼은 영화는 여기에 영웅적 색채를 덧칠한다. 유대인 승객들은 목숨을 건 단식 투쟁으로 전세계 지식인들의 양심을 울린 뒤 팔레스타인의 하이파 항에 안착한 걸로 왜곡됐다. 전 국민이 싸우면서 일하며 ‘골리앗’ 아랍과 대적하는 모습은 1970년대 근대화 과정을 거치며 한국엔 지극히 따라야 할 모범으로 제시됐다.
책은 한국 사회 안에 심어진 이스라엘 신화를 깨뜨리려 한다. 이스라엘은 불리한 여건을 딛고 전쟁에서 연달아 승리를 거뒀다(고 믿어진다). 책은 통계를 제시하며 이스라엘이 중동 화약고의 군사강국임을 명확히 한다. 이스라엘의 2006년 국방 예산은 72억 달러(미국의 군사원조를 포함하면 94억 달러)다. 인구 8,000만명이 넘는 이웃 이집트는 국방비로 42억 달러를 썼다. 이스라엘과 국경을 맞댄 이집트와 시리아, 요르단, 레바논 4개국의 국방비 총합도 79억 달러에 불과했다.
2006년 팔레스타인 무장조직의 공격에 의한 이스라엘 민간인 사망자는 17명이었다. 반면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팔레스타인 사람 660명이 죽었다. 매년 교통사고로 이스라엘인 400여명이 사망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팔레스타인 무장조직의 테러 위험도는 지나치게 부풀려졌다. 이스라엘 정부가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을 싼 노동력을 제공하고 시장 역할을 겸하는 식민지로 착취하는 현실도 전한다. 나치 홀로코스트의 피해자임을 강조하면서도 팔레스타인인에게 가혹하기 짝이 없는 이스라엘의 모습이 비정하기만 하다.
책은 이스라엘만 일방적으로 공격하지 않는다. 이스라엘과의 갈등을 자신들의 배를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어두운 면도 고발한다. “자치정부의 부패와 결탁한 신흥 자본가 계급은 동족의 피가 흐르는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구릉 위에 궁전을 짓고 있었고, 푼돈을 흘리며 더 큰 부와 권력을 향한 정치적 야심을 불태우고 있었다.”(8쪽)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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