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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풍자와 역설...요나손표 유머의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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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풍자와 역설...요나손표 유머의 향연

입력
2014.07.17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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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작가의 두번째 소설,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

빈민가 흑인 소녀 좌충우돌 모험담

요나스 요나손은 48세에 낸 첫 소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그는 스웨덴의 한 섬에서 아들과 함께 닭을 치며 산다. 열린책들 제공
요나스 요나손은 48세에 낸 첫 소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그는 스웨덴의 한 섬에서 아들과 함께 닭을 치며 산다. 열린책들 제공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작가 요나스 요나손(53)의 신작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가 출간됐다. 쉰 가까운 나이에 발표한 첫 소설로 전세계 800만부라는 경이적 판매고를 세운 작가가 4년 만에 발표한 두 번째 소설이다. 지난해 스웨덴에서 출간 이후 6개월 만에 26개국에 판권이 팔리고, 전세계 판매부수 150만을 넘기며 승승장구 중이다.

전작의 백살 먹은 스웨덴 영감에 이어 이번 소설의 주인공은 60년대 남아프리카공화국 흑인 빈민촌에서 태어난 소녀다. 다섯 살 때부터 공동변소에서 똥통을 나르며 생계를 이어가는 소녀의 이름은 놈베코 마예키지만 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소설이 중반을 넘어갈 때까지 그를 부르는 호칭은 오직 ‘깜둥이 하녀’ 또는 ‘네 이름이 뭐더라’뿐이다.

가난과 죽음이 창궐한 빈민촌에서 놈베코는 똥통의 개수를 정확히 계산해 열네 살에 관리소장으로 승진하고 이웃집 호색한을 협박해 글을 깨우치는 식으로 조금씩 빛을 발한다. 고향을 떠나 요하네스버그로 간 그는 감히 백인의 차에 치였다는 이유로 가해자의 종이 되지만 예의 명석함을 발휘해 주인이 진행 중이던 남아공 핵실험 프로젝트의 숨은 실세가 된다. 핵실험이 중단되고 관련자들이 처단 당하는 시기가 오자 놈베코는 드디어 자유의 몸이 될 기회를 맞는데, 문제는 멍청한 전 주인이 실수로 만든 잉여 핵폭탄이다. 그는 이스라엘 모사드 요원들에게 핵폭탄을 넘긴 뒤 스웨덴(당시 아파르트헤이트에 가장 적대적이었던)으로 정치 망명을 떠난다. 그러나 우편물이 뒤바뀌는 실수로 기다리던 육포 상자 대신 800㎏짜리 핵폭탄을 떠안게 되고 그로부터 기상천외한 모험이 시작된다.

작가는 냉전시대의 소모적인 이념 싸움과 인종차별 정책에 희생 당하는 개인을 집중 조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의 분위기는 시종 밝고 유쾌하다. 전작에서도 빛을 발했던 작가의 블랙 유머 덕분인데, 이번 소설은 풍자와 역설을 뼈대로 삼은 ‘요나슨표 유머’의 향연이라고도 할 수 있다. 1976년 남아공 학생 시위 현장에 대한 묘사는 다음과 같다. “출동한 경찰은 시위자들의 논리를 흥미 있게 들었고, 그러고 나서는 정부의 관점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매우 특수한 방식으로 표명했다. 다시 말해서 시위대에 발포했다.”

폭력적이고 우매하고 정신 나간 세상에서 놈베코는 의연하게 삶을 이어간다. 굵직굵직한 역사적 사건이 책장처럼 빠르게 넘어가는 가운데 표표히 걸어가는 개인에 앵글을 맞추는 작법은, 영화로 치면 ‘포레스트 검프’ 나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떠올리게 한다. 놈베코를 움직이는 것은 인류를 구원할 이념이 아닌 하루라도 더 살고자 하는 생존욕구지만, 정작 세상의 평화를 구현하는 건 정치가들이 아닌 힘없는 개인이다. 작가는 놈베코에게 행복한 결말을 선사함으로써 세상의 모든 개인, 일말의 상식과 윤리를 부지하는 개인들에게 작은 위로를 던진다.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늦깎이 작가의 번쩍이는 재치와 그의 두 번째 소설은 당분간 그가 베스트셀러 작가로서의 명성을 이어가게 해줄 듯 하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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