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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혁신, ‘핫바지 위원회’론 안 된다

입력
2014.07.1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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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로 절실해진 국가혁신

부실 우려되는 ‘범국민위원회’

현실 반영해 거국적 협력 결집해야

“이럴 거면 바쁜 사람들 모아놓고 회의는 뭣 하려고 합니까!”

지난해 8월, 기획재정부가 작성한 세법개정안 심의를 위해 민관 세제발전심의위원 수십 명이 명동 은행연합회에서 현오석 전 경제부총리 주재로 회의를 할 때였다. 그 즈음 보수논객으로 한창 주목 받던 전원책 전 자유경제원장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기재부 간부들에게 ‘돌직구’를 날렸다. 보수이되, 여야ㆍ보혁을 가리지 않고 부조리엔 예외 없이 독설을 날리는 그였지만 그날의 ‘돌직구’엔 누구라도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박근혜 정부 첫 해인 지난해 세법개정의 핵심은 사실상 증세였다. 폭증한 복지예산을 뒷받침하자면 불가피했다. 직접 증세는 아니라도 소득공제 등 각종 비과세감면을 축소하는 것 역시 서민의 조세 부담을 늘리는 만큼, 다수 납세자를 납득시킬 묘책이 절실했다. 필자만 해도 최소한의 소득세율 조정을 통해서라도 ‘부자 증세’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려 했고, 그게 최종안에 반영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회의 중에 어처구니 없는 사실이 드러났다. 부총리가 국회에 간다며 이내 자리를 뜨길래 설명을 들어보니, 개정안이 이미 국회와 언론 등에도 공표됐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세제를 심의한다는 위원회인데 어떻게 심의절차도 마치지 않고 공표를 한단 말인가. 위원들은 그저 밥 먹고 박수나 치고 집에 가란 얘긴가, 하는 불만과 자괴감이 좌중에 부글부글 끓었던 것이다.

지난 얘기를 하는 건, 그렇게 처리된 개정안이 결국 현오석 경제팀 최악의 실패작이 되고 만 경위를 곱씹기 위해서가 아니다. 세발심위와 마찬가지로 정부 산하의 수많은 민관위원회가 실제론 정부의 들러리요, 거수기가 될 수밖에 없도록 운영되는 현실을 얘기하고 싶어서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유임이 결정된 후 대국민담화를 통해 ‘국가 개조’ 의지를 천명했다. 당초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후 눈물을 머금고 비장하게 다짐한 일이었다. 세월호 참사는 정상적 행정을 가로막는 ‘관피아’의 고질적 부작용과 부패, 말단 행정망의 무능, 만연한 안전불감증 등의 적폐를 적나라하게 드러냄으로써 정부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릴 쇄신이 절박함을 확인했다.

문제는 쇄신이 다시 한번 민관위원회에 맡겨지게 됐다는 것이다. 정 총리는 민간 각계가 폭넓게 참여하는 국무총리 소속 가칭 ‘국가대개조 범국민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산하에 공직개혁, 안전혁신, 부패척결, 의식개혁 등의 전문분과를 둬 의제를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실행해 나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아직 첫걸음에 불과하다고 해도 위원회 구성이나 운영계획이 막연하고, 분과활동 계획도 엉성해 국운을 가를 쇄신을 제대로 추진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야당의 지적으로 ‘개조’대신 ‘혁신’이라는 표현을 쓰게 됐지만, 어떤 경우든 국가쇄신 수준의 기획이라면 먼저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전략적 목적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현실적으로는 ‘관피아’ 문제를 합리적으로 풀고, 말단까지 강력한 책임행정 관행을 세울 수만 있어도 엄청난 성공이다. 따라서 보다 집약적인 전략 목표를 세우고, 위원회 분과활동도 공직개혁과 안전혁신 정도로 압축하는 게 좋겠다.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범국민위원회가 글자 그대로 전 국민의 여망을 담아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선임한 학자나 몇몇 전문가들이 불려가 정부 계획에 박수나 치는 식이 돼선 안 된다. 정부 인사의 참여를 최소화 하되, 여야 정치권이 균형을 맞춰 핵심 위원들을 추천ㆍ선임하고, 그들이 분과위원들을 구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구성된 위원회가 보다 구체적인 혁신 목표와 의제를 정하는 게 맞다. 시간이 걸리고 운영이 힘들어도 그러지 않으면 다시 한 번 공무원에 의한, 시늉뿐인 ‘셀프 개혁’에 그칠 수밖에 없다.

정 총리는 국가혁신에 신명을 바치겠다며 팽목항을 다시 찾아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 진심을 이행하기 위해서라도 최적의 위원회 구성 방식을 관철하고, 국회와 야당을 찾아 거국적 협력을 이끌어 내는 성의를 보여야 한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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