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 졸업생들 면접 때 부모 직업·인맥 위주 질문
변호사 시험성적 비공개 후 채용의 불투명성 한층 커져
“친척이나 지인 중에 이름 대면 딱 알만한 사람이 진짜 아무도 없어요?”
평범한 회사원의 아들로 태어나 대기업에 입사했던 A(34)씨는 기계 부품처럼 소모되는 대기업 직원의 삶이 싫어 3년 만에 회사를 박차고 지방의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들어갔다. 졸업 당시 성적이 최상위권이었던 A씨는 노동법 전문 변호사가 되기 위해 준비한 자격증과 실무 경력까지 모아 자신 있게 서울의 유력 로펌에 입사지원서를 넣었다. 서류전형에서만 7번 떨어질 때까지도 포기하지 않았던 A씨는 한 로펌에서 첫 면접을 본 뒤 미련 없이 고향으로 내려갔다. 아버지 직업과 주변의 인맥, 학벌에 대해서만 묻는 로펌 인사 담당자의 덤덤한 표정에서 법조계의 넘지 못할 벽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2012년 1회 변호사 시험을 통과한 1기 로스쿨 졸업생부터 올해 3기 졸업생까지, 한국 법률시장에는 총 4,500여명의 변호사시험(변시) 출신 변호사들이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법조계에 ‘현대판 음서제(고려·조선 때 공신 또는 현직 당상관의 자손을 과거 없이 채용하던 제도)’라고 할 만한 기득권층 채용 우선 관행이 공고해지며 A씨와 같은 인재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한국일보 취재 결과 국내 상위 10대 로펌에서 채용한 변시 출신 변호사들 중 전 헌법재판관 등 전·현직 고위 법조인, 국회의원과 시장 등 유력 정치인, 대기업 CEO, 현직 행정부 관료 등 유력 인사들의 자녀가 20여명 포진한 것으로 확인됐다. 로펌들은 이런 인맥을 대규모 사건 수임의 경로로 활용하며 기득권층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추세다. 경력 변호사를 법관으로 채용하는 법원을 제외하고, 변시 출신 변호사를 검사로 채용하는 검찰에서도 유력 인사의 자녀 이름이 눈에 띄었다.
든든한 배경이 없다면 이른바 SKY(서울?고려?연세대)를 중심으로 한 서울 유명 대학 출신이어야 10대 로펌 명함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10대 로펌의 변시 출신 변호사 중 SKY 로스쿨 출신은 64.2%였으며, SKY 학부 출신은 74.1%에 달했다. 그나마 각 로펌이 ‘지역 차별’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 지방대 로스쿨 출신들을 소수 선별하고 있지만, 이들마저도 절반 가까이 SKY 학부 출신으로 확인됐다.
법조계에선 현대판 음서제 부활과 재림한 학벌 지상주의의 원인으로 변호사 시험 성적 비공개를 꼽고 있다. 나승철 서울변호사협회 회장은 “변호사 시험 성적을 공개하지 않으면서 채용의 불투명성이 높아지고, 로스쿨이 추구하는 다양성 확보도 실패했다”며 “(로스쿨 및 변호사 시험 제도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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