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ㆍ보험ㆍ펀드 한데 모아 비과세
英, 개인 자산 축적과 노후 대비에 / 日, 주식ㆍ신탁 투자해 경기부양 초점
금융당국, 일본식 지향하는 듯
가계 자산 축적을 돕는 영국식이냐, 금융시장 부양에 초점을 맞춘 일본식이냐.
금융위원회가 출시하겠다고 발표한 개인자산종합관리계좌의 운용 방향을 놓고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영국과 일본 등에서 시행중인 계인저축계좌를 본뜬 이 계좌는 예적금, 펀드, 보험 등 다양한 금융상품을 한 계좌에 통합관리하면서 일정 한도 내에서 비과세 등 세제 혜택을 주도록 설계되는 상품. 지금까지는 개별 상품별로 세제 혜택을 주던 것을 1개의 계좌로 통합해 관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계좌 내에서는 약정기간과 무관하게 수익률을 쫓아 예금, 펀드, 보험 등의 불입액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다. 고객 입장에서는 굳이 세제 혜택이 있는 금융상품을 일일이 찾아 다닐 필요가 없게 되는 셈이다.
금융위가 밝히고 있는 이 상품 도입 이유는 서민 재산형성 지원과 자본시장 저변 확대다. 하지만 전자는 예적금 위주의 안정적 자산운용, 후자는 투자상품 중심의 위험감수형 자산운용을 각각 요구하고 있어 두 마리 토끼를 잡기는 쉽지 않은 상황. 당국이 금융시장 부양 쪽에 정책적 무게를 두는 모습을 보이면서 자칫 시장의 부침에 가계 경제를 내맡기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확연히 대비되는 영국과 일본
영국은 개인자산계좌(ISA) 제도의 원조국이다. 1999년 기존 세제혜택 저축상품을 통합해 도입된 ISA는 전체 인구의 23%에 해당하는 1,460만명(2012년)의 가입자를 유치하며 가계 자산 형성에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본은 영국을 본떠 올해 개인자산계좌(NISA) 상품을 출시했다. 2023년까지 10년 동안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NISA는 20세 이상 일본 거주자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는데 출시 한달 만에 650만명이 가입하는 등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두 나라는 제도 운용 면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개인의 자산 축적, 특히 노후생활 대비에 초점을 둔 영국은 ISA 가입자의 64%가 예적금 비과세 혜택을 받는 현금ISA를 보유하고 있다. 반면 손실 가능성 있는 투자자산에 예치금이 편입되는 유가증권ISA 가입자 비율은 12.5%, 혼합형 ISA는 19.4%다. 손실 위험 없이 재산을 불리기 위해 ISA 상품을 찾는 셈이다. 55세 이상 가입자도 전체의 40%에 달해 노후자금 마련 기능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반면 일본은 예치금 투자처를 상장주식, 주식투자신탁으로 한정하고 있다. 상품 운용 방향이 아베 신조 정부의 적극적 경기부양책과 맞물려 있는 셈이다. 일본 은행, 증권사들이 신탁자금 확보 차원에서 경쟁적인 고객 유치전을 펼치고 있는 것도 영국과는 차이가 있다.
“일본식에 경도됐다간 부작용 커”
금융위는 세제 당국인 기획재정부와의 협의가 필요하다며 개인자산관리계좌의 구체적 운용 방향엔 말을 아끼고 있다. 이런 절차 탓에 도입 시점도 2016년쯤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개인자산관리계좌 출시가 전업주의(금융업종 영업 범위를 고유업무에 한정) 완화를 기조로 한 금융업 규제 개선안의 일환으로 발표됐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영국식’보다 ‘일본식’을 지향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가계, 기업 등 내수주체 간의 원활한 자금 유통을 중시하는 최경환 경제팀이 개인자산관리계좌를 중요한 정책수단으로 삼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금융당국 관계자는 “기존 세제혜택 상품의 비과세 상한액이 적다는 지적이 있어 이를 확대하고, 예적금보다는 펀드 등 투자자산의 세제 혜택이 크도록 설계될 것”이라고 밝혔다. 예금 자산의 증시 이동 효과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얘기다. 비과세 카드로 서민들을 손실 위험이 따르는 금융투자 시장에 끌어들이려고 한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정부가 개인자산관리계좌의 가입 요건을 대폭 완화할 경우 빈부격차를 악화시키는 부작용도 우려된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로서는 비과세 소득공제장기펀드를 출시하면서 연소득 5,000만원 이하로 가입조건을 제한했다가 흥행에 실패한 경험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면서도 “누구나 가입할 수 있는 일본 NISA처럼 가입요건을 대폭 완화하는 방향으로 갔다간 부자들이 대거 비과세 혜택을 누리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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