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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도 마음도 게을러지는 꿈속 같은 편백나무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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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도 마음도 게을러지는 꿈속 같은 편백나무 숲

입력
2014.07.15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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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 축령산휴양림. 독림가 임종국 선생이 심기 시작한 나무들이 그림 같은 숲이 됐다. 피톤치드 가득한 숲에 들면 몸이 맑아지고 마음의 먹먹함도 시원하게 해소된다. 이렇게 아름다운 숲은 입장료도, 주차요금도 없다.
장성 축령산휴양림. 독림가 임종국 선생이 심기 시작한 나무들이 그림 같은 숲이 됐다. 피톤치드 가득한 숲에 들면 몸이 맑아지고 마음의 먹먹함도 시원하게 해소된다. 이렇게 아름다운 숲은 입장료도, 주차요금도 없다.

몸도 마음도 게을러질 필요가 있다. 서류 더미 잊고, 스마트폰도 내 팽개친 다음, 싱그러운 숲길을 걷고, 시리도록 차가운 물에 발 담그며 시간 실컷 죽인다. 어둑해지면 고개 들어 밤하늘에 초롱초롱 빛나는 별을 바라보고, 바람소리 자장가 삼아 시나브로 잠이 들고…. 게으른 게 ‘힐링’이다. 전남 장성에 게을러지기 딱 좋은 곳들 제법 있다. 그림 같은 편백나무 숲, 원시의 계곡과 영화 속 정겨운 산마을, 고즈넉한 고찰…. 한 바퀴 돌고 나면, 심신이 쌩쌩해진다. 이런 다음, 다시 돌아온 일상은 전보다 더 활기 넘친다.

축령산휴양림 모암지구 주차장에서 우물터 가는 길. 상록수들이 하늘로 쭉쭉 뻗었다. 새소리, 바람소리 맑고 나무 향기 참 짙다. 가슴에 여운 오래 남는 걸로 따지면 꽃보다 나무가 낫다.
축령산휴양림 모암지구 주차장에서 우물터 가는 길. 상록수들이 하늘로 쭉쭉 뻗었다. 새소리, 바람소리 맑고 나무 향기 참 짙다. 가슴에 여운 오래 남는 걸로 따지면 꽃보다 나무가 낫다.

○ 피톤치드 가득한 축령산휴양림

차창 넘어 쌉쌀한 나무 향이 들이닥친다. 목적지 가까워졌다는 신호다. 거짓말 아니다. 축령산은 코가 먼저 반응하는 산이다.

모암지구(마을) 주차장에서부터 병풍처럼 펼쳐지는 편백나무 숲. 볼수록 멋지다. 여럿이 열 맞춰 늘어서 있으니 더 그렇다. 하늘로 쭉쭉 뻗은 자태에 기분도 덩달아 상쾌해진다. 이게 숲의 매력이다. 발 들여 놓기도 전에 눈을 상쾌하게 만들고, 가슴의 먹먹함 풀어주는 힘을, 숲은 분명히 지니고 있다. 이거 제대로 경험할 수 있는 때가 요즘이다.

축령산은 ‘편백나무의 산’이다. 이 땅에서 이 산에 편백나무가 가장 많다(경기도 가평의 축령산과 다르다). 40~50년생 편백나무와 삼나무 등 상록수림이 1,148ha 규모로 조림되어 있고 이 가운데 779ha가 휴양림으로 관리되고 있다. 이 숲 거닐며 연인들 사랑 속삭이고, 가족들 이야기꽃 피운다. 세상이 숲으로만 이뤄져 있다면 싸울 일 뭐 있을까 싶다. 숲에선 사람이 참 순해지니 그렇다.

숲에 들면 아픔이 낫는다. 편백나무는 피톤치드(식물이 만드는 살균성을 가진 모든 물질)를 듬뿍 선사하다. 이거 때문에 피부병이 사라졌다는 사람들 종종 만난다. 의사도 못 고친 병이 없어졌다는 사람도 있다. 이들이 말하는 ‘기적'의 원인이 바로 피톤치드다. 나무들이 자기 방어를 위해 내 뿜는 이 물질이 심폐기능 좋게 하고 피부질환, 스트레스 해소에 효과가 있단다. 편백나무, 소나무, 삼나무 등이 피톤치드를 많이 내뿜는 수종이다. 이 중에 편백나무가 단연 으뜸이란다. 몸이 건강하면 마음은 절로 건강해진다. 이러니 숲에 들면 마음의 병도 낫게 된다.

마음 깨끗해지는 이야기도 숲에 깃들어 있다. 이 어마어마한 숲은 한 사람의 열정으로 탄생했다.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산에 독림가(篤林家) 임종국(1915~1987) 선생이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이게 1956년의 일. 이후 1976년까지 그는 사재 털어 묘목 생산하고 가물 때 손수 물지게 지고 날라 나무들 보살폈다. 여기에 주민들이 힘을 보탰다. 서삼면 모암리, 대덕리 등 축령산 일대에 이렇게 편백나무, 삼나무, 낙엽송이 가득 찼다. 숲을 가꾸며 머물던 움막 터와 우물이 숲 한가운데 남아 있다. 숲을 잘 가꿔 놓은 뒤 그는 기어코 숲에 묻혔다. 그를 수목장한 느티나무가 헬기장 인근에 있다. 숲은 현재 국유림으로 관리되고 있다.

금곡마을. 영화 '태백산맥'을 시작으로 '내마음의 풍금', 드라마 '왕초' 등이 잇따라 이 마을을 배경으로 촬영됐다. 몇몇 초가지붕이 기와지붕으로 바뀌었지만 산마을의 고즈넉한 정취는 어디 가지 않았다.
금곡마을. 영화 '태백산맥'을 시작으로 '내마음의 풍금', 드라마 '왕초' 등이 잇따라 이 마을을 배경으로 촬영됐다. 몇몇 초가지붕이 기와지붕으로 바뀌었지만 산마을의 고즈넉한 정취는 어디 가지 않았다.

걷기 좋게 산책로가 잘 나있다. ‘솔내음숲길’ ‘산소숲길’ ‘건강숲길’ ‘하늘숲길’ 등이 총 18.2km에 걸쳐 거미줄처럼 뻗어 있다. 산 전체를 에두르는 23.6km의 ‘산소길’도 조성돼 있다. 추암마을, 대덕마을, 모암마을, 금곡마을 등 인접한 마을 어디서든 산으로 들 수 있다. 임도를 따라 각각의 마을에 닿을 수도 있다. 이러니 아무 구간이나 정해 걸을 수 있을 만큼 걸어 본다. 모암마을 주차장에서 우물터까지(편도 1.4km) 다녀오는 사람들이 많다. 길옆으로 맑은 물 흐르는 계곡이 따라간다. 편백나무도 실컷 볼 수 있다. 갈수록 경사가 가팔라지지만 쉬엄쉬엄 걸으면 아이들도 문제없이 갈 만한 거리다.

우물터에서 금곡마을(편도 약 2.8km)로 내려가기도 한다. 금곡마을은 ‘영화마을’로 불린다. 영화 ‘태백산맥’을 시작으로 ‘내 마음의 풍금’, 드라마 ‘왕초’ 등이 잇달아 촬영되며 붙은 이름이다. 일부 집들의 지붕이 기와로 바뀌었지만, 오래 전 산마을의 정취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민박집 많고 시원한 열무국수와 막걸리, 파전 파는 곳도 있다.

수령 700년된 백양사 갈참나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갈참나무다.
수령 700년된 백양사 갈참나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갈참나무다.

○ 초록의 명품길 품은 불교 5대 총림 백양사

백양사는 꼭 들른다. 맞다. ‘애기단풍’ 예쁘다고 소문난 그 절이다. 여름에는 단풍구경 말고 길을 느릿하게 걷는다. 절도 절이지만, 요즘은 들머리(매표소)부터 절집에 이르는 길이 참 곱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드는 ‘명품 길’이다. 약 1.6km에 불과하지만, 이 길에 여름이 우아하게 머물고 있다. 백암산 기슭이다.

숲 터널 감상하며, 연못 구경하고 계곡도 살피며 느릿하게 간다. 눈 돌리는 곳마다 초록색의 풍경화. 굽이 지날 때마다 태양의 각도가 미미하게 틀어지니 ‘초록’이 수십까지 빛깔로 부서진다. 초록, 연두, 녹색, 노랑에 가까운 초록…. 초록이라고 해서 다 같은 초록이 아니었다. 온갖 싱싱한 빛깔 부려지는 ‘여름 길’이 이토록 싱그럽다. 마음이 초록으로 물드는데 필요한 시간은 불과 10분이다.

연못 앞에서부터 차례로 등장하는 오래 된 갈참나무들. 성(城)을 지키는 동화 속 거대한 병사들이다. 우람한 몸통에서 흩어지는 가지들이 신령스럽고, 여기 달린 잎사귀들 뙤약볕에 반짝이는 풍경이 또 예사롭지 않다. 묵은 것의 아우라는 이런 거다. 경탄을 넘어 경외감을 갖게 하는 것. 백양사 들머리는 갈참나무 군락지다. 학술적 가치가 높은 것들이 많은데, 700년 수령의 한국에서 가장 나이 많은 갈참나무도 이 길에 있다.

여기 지나면 그 유명한 쌍계루와 백학봉이 어우러진 풍경. 하얀 바위 암봉 아래 고상한 멋 가득한 누각, 이것들이 데칼코마니처럼 반영된 연못. ‘백양제일경’이라고 불리는 풍경이 바로 이거다. 단풍 화려할 때 압권이니, 이거 안보면 백양사 안 간 걸로 치부된다. 그런데 여름날의 풍경도 이에 못지않다. 푸른 연못과 녹음이 어우러진 풍경이 기가 막히다. 가을에만 백양사 찾을 일이 결코 아니다.

쌍계루와 백학봉, 연못이 만들어 내는 데칼코마니. 단풍 화려한 가을 못지 않은 절경이다.
쌍계루와 백학봉, 연못이 만들어 내는 데칼코마니. 단풍 화려한 가을 못지 않은 절경이다.

쌍계루 앞이 비자나무 군락지다. 백양사 곳곳에 눈여겨 볼 나무들 많다. 경내 마당에 보리수나무와 그 유명한 매화나무(고불매)까지. 계절 상관없이, 의미 곱씹다보면 나무 한 그루가 안겨주는 ‘힐링’에 새삼 놀라게 된다.

백양사는 반전이 있다. 이 절, 아주 크다. 선원(禪院), 강원(講院), 율원(律院) 등을 모두 갖춘 절이 총림인데, 백양사는 한국 불교 5대 총림 가운데 하나인 고불총림이다. 반전은 이제부터. 경내로 들면 큰 절 특유의 위압감 대신 소박하고 단아한 멋에 마음 푸근해진다. 정겨운 절이다.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눌러앉게 되는 공간, 돌아 나올 때 가슴에 남는, 고향집 같은 친근한 장소가 여기다. 이러니 백양사 가면, 거창한 수식어에 주눅 들지 않아도 된다. 가람의 단청 빛깔 고우니 마당에 드는 뙤약볕마저 온화하게 느껴진다. 대웅전 뒤로 보이는, 우뚝한 백학봉까지 우아한 풍경으로 끌어들이는 백양사다.

대웅전 뒤에 석가모니 진신사리 모신 탑이 있다. 마당에서 잘 보이지 않아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니 기억해 둔다.

남창계곡 새재갈림길 인근. 주저 앉아 발 담그는 곳이 선계(仙界)다.
남창계곡 새재갈림길 인근. 주저 앉아 발 담그는 곳이 선계(仙界)다.

○ 물 맑은 탁족 명소 남창계곡

정갈한 사찰에서 탁족이 민망하다면 남창계곡으로 간다. 길이가 4km에 달하고 크고 작은 폭포와 기이한 바위들이 많아서 광주 등 호남지역에서는 제법 유명한 계곡이다. 내장산국립공원(남창지구), 입암산 기슭인데, 백양사에서 차로 20여분 거리다.

남창주차장 아래쪽인 하류에서는 자하동마을 주변이 물놀이 장소로 이름났다. 남창탐방지원센터를 지나 본격 국립공원지역으로 들어서면 숲이 우거져 운치가 있다. 물은 또 어찌나 맑은 지 물고기 헤엄치는 것이 또렷하게 보인다. 초입에는 삼나무가 자라는데, 하늘로 쭉쭉 뻗은 삼나무 아래서 즐기는 탁족은 풍류가 두 배다. 발 담그면 작은 물고기들이 달려들어 ‘닥터피쉬’처럼 발등을 쫀다.

남창계곡을 거슬러 올라 입암산성 지나 갓바위까지 가거나(약 4.4km), 장성새재, 순창새재를 지나 백양사(약 5.8km)로 하산하기도 한다. 그러나 ‘새재갈림길’까지만 가도 탁족을 즐기는데 부족함 없는 장소들 쉽게 발견하게 된다. 탐방지원센터에서 20여분만 걸으면 새재갈림길이다. 물 흐르는 곳 어디든, 엉덩이 붙이고 앉아 게으름 부리면 이게 진짜 ‘힐링’이다.

○ 여행메모

축령산휴양림은 추암지구, 대덕지구, 모암지구, 금곡지구 4지구로 나눠져 있다. 주차료도 없고 입장료도 없다. 각 지구마다 민박집과 펜션이 많다. 대부분 모암지구로 몰린다. 주차장에서 편백나무 숲이 지척이다. 통나무집이 있는데 인기가 높아 성수기에는 한달 전부터 예약해야 할 정도다. 금곡지구에도 민박집이 많다. 아침식사를 제공하는 곳도 있다. 홍길동테마파크 에는 오토캠핑장과 야영장이 마련돼 있다. 호남고속도로 백양사IC나 장성IC를 이용한다. 백양사, 남창계곡, 축령산휴양림이 각각 차로 약 20~30분 거리다. 장성군청 문화관광과 (061)390-7241

장성=글ㆍ사진 김성환기자 spam001@hksp.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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