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10월 6일 이집트 공군기 수백 대가 긴급 출격, 북상하기 시작했다. 지중해 상공에 다다른 공군기들은 갑자기 기수를 동쪽으로 틀어 저공으로 이스라엘을 급습, 공군기지 등 주요 군사시설과 전략 거점들을 박살냈다. 작전은 완벽하게 성공했다. 1, 2, 3차 중동전쟁 때 이스라엘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던 아랍 세계는 기쁨으로 들끓었다. 이 기습작전을 뒤에서 기획하고 지휘한 것은 다름 아닌 북한이었다. 미그기 조종사 1개 중대와 군사고문단을 극비리에 파견해 이집트의 한 맺힌 복수전을 도운 것이다.
▦ 이 일로 이집트에서 북한과 김일성은 인기짱이 됐고, 양국관계는 혈맹 수준으로 발전했다. 급기야 이집트는 소련과의 약속을 어기고 북한에 소련제 스커드-B 탄도미사일 수 발을 제공했다. 북한은 이를 분해ㆍ역설계 해 1980년대 중반 스커드-B 개발에 성공했다. 1988~9년 이란-이라크 전쟁 때에는 이란에 수 백기를 수출했고, 바그다드 공격에 실제로 사용됐다. 북한이 발사시험을 많이 하지 않고도 스커드 계열 탄도미사일을 개발해온 건 중동 수출과 실전 사용을 통해 데이터를 축적한 덕분으로 분석되고 있다.
▦ 북한이 개발한 스커드-B(사거리 300㎞), 스커드-C(사거리 500㎞)는 고폭탄과 생화학 무기, 80킬로톤급 핵무기를 장착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커드-D는 탑재 중량을 줄인 대신 사거리를 700㎞로 늘린 것이다. 북한이 13일 새벽 개성 북쪽에서 동해상으로 발사한 2발의 미사일은 스커드-C 또는 그 개량형이나 스커드-ER(사거리 700㎞이상)인 것으로 군당국은 보고 있다. 올 들어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는 6번 째인데 모두 12발에 이른다.
▦ 북한이 다양한 평화제스처와 함께 군사분계선 인접 지역에서 그것도 심야에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데는 여러 가지 노림이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자신들이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탄도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강해 보인다. 한국과 미국을 압박해 협상의 주도권을 쥐려는 속셈일 테다. 하지만 역풍도 생각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으로부터 미사일방어(MD) 시스템 가입 압력을 강하게 받고 있는 한국 정부다. 미국 주도의 MD체제를 거부하기 어렵게 만드는 게 자신들에게 무슨 이익일까.
이계성 수석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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