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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춤은 제게 ‘마데카솔’입니다

입력
2014.07.1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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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가락하던 장맛비도 누그러뜨리지 못한 더위가 거침없이 대기를 집어삼킨 6월 말 어느 토요일 오후, 광화문에서 시청에 이르는 길은 낯선 외국인의 눈에라면 전쟁터처럼 보였을지 모르겠다. 겹겹이 보도를 둘러싼 차량과 물샐틈없이 에워싼 경찰들 사이를 걸으며 하이힐에 금실이 반짝이는 겉옷 차림이니 경계대상일 수 없다고 애써 위안하면서도 주체할 수 없는 불안으로 걸음은 자꾸 빨라졌으니 말이다. 그리고 광장에서 이제 더는 찾아주는 이도 없어 쓸쓸한 노랑 리본들의 흐느낌을 꾹꾹 눌러 내리며 청사로 들어섰다.

북적거리는 분위기가 뭔가 싶어 잠시 멈춘 행인들 틈을 비집고, 산책 길에 들렀다는 할아버지를 지나, 가족은 물론 친구들까지 데리고 온 꼬마숙녀 옆에 간신히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흐르던 땀이 식기는 했을까? 빨간 넥타이를 맨 배불뚝이 아저씨, 어디에서나 흔히 마주치는 아줌마, 경연프로그램에서 막 뛰쳐나온 듯한 소녀, 그르렁대는 쉰 소리로 세상을 다 안다고 외칠 것 같은 소년들 한 무리가 뿜어내는 열기에 이번에는 숨이 턱 막혀온다.

서울문화재단이 작년에 처음 시작해 2년째를 맞은 ‘서울댄스프로젝트’의 올해 행사 시작을 알리는 공연, ‘우리는 영웅을 믿지 않는다’이다. 제목이 설명하듯 구석으로 차버려도 시원찮을 찌질이 슈퍼맨이 등장하는데, 마음 좋은 시민들이 그를 결국 보듬어 안으니 막장 사연에 지쳐 고단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드라마는 바로 이거지 싶다. 우리 옆집에 사는 지극히 평범한 시민들이 “골프모임에서 빠져 나와 딸과 함께 춤추며 노는 모습을 아내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바쁜 걸음을 멈추고 내가 행복해 하는 것을 보며 당신도 잠시나마 이 즐거움에 동참하라”고 춤을 추며 거리로 나온 것이다. 근사하게 보여 남들에게 박수 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행복해지고 싶어서.

이론가며 안무가이자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학 부교수인 메리 피츠제럴드는 영국에서 발행하는 모 전문지를 통해 “역사적 관점에서 춤이란 언제나 커뮤니티 또는 ‘사회에 기반을 둔’ 예술 형식이며 공동체 의식 및 사회화의 핵심적 일부로 우리 역사 거의 전반에 걸쳐 다양한 기능을 수행해 왔다”고 밝힌다.

수직으로 껑충껑충 뒤는 마사이족 ‘전사의 춤’은 높이 뛰어올라 살핌으로써 부족을 보호하는 모습을 그렸고, ‘알 가라빌’은 요르단 시골 여성들이 밀을 씻으며 추는 춤이다. 벽화 속 우리 조상들도 예쁘게 차려 입고 춤을 추었는데 왕이 추었다는 것에서 기생춤까지 전해오니 이름을 달리 부를 뿐 그 엄격한 반상제도도 춤 앞에서만은 무용지물이었던 것 같다. 콜롬비아의 무용단 ‘엘 꼴레히오 델 꾸에르뽀’(몸의 학교)는 빈민가에서 마약상의 심부름으로 연명하다가 채 10살을 넘기지도 못하고 죽어가던 아이들의 마음을 춤으로 다독여 건강하게 세상으로 돌려보낸다. 그 중 몇은 무용수로 남아 또 다른 아이들과 만나기도 한다.

엘 시스테마와 지라니 합창단이 그러하듯 음악은 상처받은 아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희망을 꿈꾸게 한다. 스페인의 패밀리댄스는 함께 춤추며 닮고 싶지 않던 어머니의 삶, 거부하며 같아지던 아버지의 모습을 긍정함으로써 건강한 가족관계를 회복하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서울댄스프로젝트 첫해 거리에서, 광장에서, 공원에서 사람들과 어울렸던 한 시민은 “춤이 건강을 찾아주었고 동시에 자신감을 솔솔 돋게 해준 마데카솔”이라 고백한다. “살아온 날보다 살 날이 짧지만 정신적 좀비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던 큰형님은 춤에 단단히 재미를 붙여 올해 또 거리로 나올 예정이다. 가수의 꿈을 접어야 했던 소녀는 안무가를 그리며 희망을 찾았다.

올 봄, 우리 모두 지독히 아팠다. 살아갈 이유와 희망을 잃은 이들에게 의욕을 잃은 나도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하지만 손을 잡으면 가슴이 전하는 말이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공동체 문화를 상징하며 상처를 어루만진 생활 속 춤을 기억하자. 난 양복 차림으로 거리에서 춤추던 당신 얼굴에서 행복을 읽었다. 그래서 가을까지 만날 그 춤이 가슴에 눌러놓은 흐느낌을 달래줄 것이라 믿는다.

김신아 아트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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