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에 통화정책 휘둘리고 경제 전망도 조삼모사 신뢰 잃어
대한민국의 중앙은행 한국은행이 위태롭다. 이주열 총재가 취임(4월1일)한 지 100일 가량. 김중수 전 총재 당시 추락할 대로 추락한 한은의 위상을 회복시켜 놓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이 벌써부터 차갑게 식어가는 중이다. 통화정책의 독립성은 ‘정책 공조’라는 미명 아래 훼손될 위기에 내몰렸고, 번번이 뒤바뀌는 경제전망에 “민간 연구소보다 못한 예측기관”이라는 악평이 쏟아진다. 여기에 김 전 총재가 정통 한은맨을 몰아내고 자기 사람으로 대거 물갈이한 데 따른 심각한 후유증은 이주열 체제에서도 지속되는 양상이다. 이래저래 총체적인 난국이다.
1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대다수 증권사들은 한은이 8월 기준금리 인하에 나설 것이라고 보고 있다. 삼성, KDB대우, 하나대투, 우리투자, HMC투자증권 등은 10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뒤 상당 기간 금리 동결 행진이 이어질 거라던 당초 전망을 접고 8월 금리 인하로 돌아섰다. 한국투자증권은 8월 금리 인하는 물론 연내에 추가로 1차례 더 금리가 인하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했다. “경제 하방 리스크가 커졌다” “물가상승압력이 예상보다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 등 금리 인하 시그널로 인식되는 이 총재의 발언, 그리고 금통위원 중 1명이 금리 인하 쪽으로 이미 돌아선 것 등이 맞물린 결과다.
문제는 이런 변화가 한은의 순수한 인식 전환에 따른 것이 아니라 정권 실세인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의 의지와 맞닿아 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라는 점이다. 최 후보자는 앞선 인사청문회에서 추가경정예산 편성과 더불어 완곡하지만 금리 인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결국 한은이 정부와 정치권에 흔들리고 있는 것이라고밖에는 볼 수 없다”고 꼬집었다.
금리 정책은 물론 정부 정책에서도 중요한 토대가 되는 한은의 경제전망에 대한 신뢰도 점점 허물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다. 1년 전만해도 올해 2.9%에 달할 거라던 전망치는 매번 0.2~0.4%포인트씩 낮춰지며 올 7월 전망에서는 1.9%까지 낮아졌다. 한은의 중기 물가목표(2.5~3.5%)에 한참 못 미치는 수치다. 애당초 시장 전망보다 높게 전망치를 잡으면서 금리 인하 타이밍을 놓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영준 경희대 교수는 “금리 인하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굳이 이 시점에서 ‘하방 리스크’를 거론하는 것은 청와대, 정부 등의 압박에 밀려 변명거리를 찾은 모양새”라고 말했고, 김한진 KTB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은 “전망 자체가 잘못되면서 한국은행이 금리를 제때 내리지 못하고 이제 와서 뒷북을 치는 형국”이라고 지적했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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