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구로구 소각장 위치 발표에 인접 광명시민들 "변경" 갈등 시작
두 지자체, 수도권행정협의회 주민 설득 통해 2000년 환경 협약
# 11일 오후 경기 광명시 가학산 자락, 1만5,347㎡ 규모의 자원회수시설(소각장)은 빨간 바탕에 하얀 구름이 그려진 외벽만 보면 놀이공원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곳은 오전 7시면 쓰레기를 담은 트럭들이 드나드는 엄연한 소각시설. 1999년 준공 후 매일 150톤씩 관내 쓰레기를 처리해왔다. 더불어 서울 구로구의 쓰레기도 그만큼 소각하고 있다.
2000년 광명시와 구로구가 국채 최초로 맺은 지방자치단체간 ‘환경빅딜’ 덕이다. 당시 주역인 백재현(현 국회의원) 전 광명시장은 “15년간 양쪽 공무원들이 쏟은 노력이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 10일 서울 마곡동의 서남물재생센터(하수처리장)는 106만5,000㎡의 부지 대부분이 숲과 들판으로 뒤덮여 있었다. 수조 입구는 밀착패널로 고정돼 악취가 없는데다, 처리공정 후 방류한 물로는 생태체험이 가능한 연못도 조성했다. 서울 서남부 9개 구뿐 아니라 광명시도 하수를 보내고 있다. 역시 환경빅딜 덕분이다. 백만성 센터 수질과장은 “양측이 협의해 처리비용은 오염물질 양에 따라 정산한다”고 말했다.
지금도 여전하지만 특히 1990년대 후반부터 지역이기주의로 인한 갈등이 전국 곳곳에서 벌어졌다. 쓰레기소각장, 하수시설, 화장시설 등 이른바 혐오시설은 ‘우리 동네엔 절대 안 된다’는 님비(NIMBYㆍNot In My Back Yard) 현상이 심한 반면, 학교 병원 등 편의시설은 ‘우리 동네에 유치하겠다’는 핌피(PIMFYㆍPlease In My Front Yard) 현상이 팽배했다.
광명시와 구로구도 마찬가지였다. 96년 9월 구로구가 관내 천왕동 항동을 소각장 후보지로 밝히면서 두 지역의 갈등이 표면화했다. 당시 서울시는 쓰레기처리 정책을 매립에서 소각으로 바꾸고 ‘1구 1소각장’ 방침을 내려 보냈다.
광명시는 거세게 반발했다. 구로구의 부지가 시와 인접해 시민의 30%인 10만명 가량이 소각장 운영으로 발생하는 비산먼지와 소음 악취 등에 고스란히 노출될 것으로 봤기 때문. 광명 시민들은 구로구청으로 몰려가 부지 변경을 요구하는 등 집단적으로 항의했다. 광명시 역시 99년까지 관내 가학동에 자체 자원회수시설을 짓기로 한 터라 주민들의 반발을 막을 여력이 없었다.
2년간 평행선을 달리던 양측의 협의가 전환점을 맞은 건 98년 8월. 광명시의 또 다른 과제인 하수처리장 건립 계획이 수면위로 떠오르면서부터다. 광명시는 당시 사업비 1,655억원을 들여 처리장을 짓기로 했지만 예산 부담으로 주춤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두 지방자치단체는 서울 경기 인천 강원 등 수도권 및 인접 광역단체간 협의체인 ‘수도권행정협의회’를 통해 구로구의 쓰레기는 광명시 소각장에서, 광명시의 하수는 서울시 가양하수처리장에서 처리하는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기초자치단체간 갈등이 광역단체간 ‘통 큰’ 합의로 해결 접점을 찾은 것이다.
양측은 의회 동의 및 주민 설득 과정을 거쳐 2000년 4월 마침내 국내 최초로 ‘환경빅딜’(광명시자원회수시설 공동이용에 관한 협약)을 성사시켰다. 차도연 구로구 청소행정과장은 “구로구는 소각장 건설비를, 광명시는 하수종말처리장 건설비를 각각 수백, 수천억원씩 절감했다”며 “이를 모델로 전국 각지에서 유사한 협약들이 뒤따랐다”라고 했다.
합의를 지켜가기 위한 15년의 노력 역시 눈여겨볼만하다. 지역 주민들의 항의와 민원을 해결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구로구와 광명시는 담당국장 및 과장, 기초의회 의원 등으로 이뤄진 소각장 운영위원회를 구성해, 올 3월까지 15년간 총 39차례나 만남을 이어오고 있다. 매년 2, 3차례씩 꾸준히 논의를 한 셈이다.
운영위원회의 안건 역시 ▦처리비용 분담방식 ▦민간 위탁운영 시 계약방식 ▦자연재해 등으로 시설 피해 시 복구비용 분담 ▦주민 불편해소 방안 등 광범위하다. 현재 소각장 처리비용의 경우, 반입량에 비례해 매달 금액을 결정하고 있다.
두 지역의 상생은 뜻하지 않은 수익도 안겨줬다. 2004년 12월부터 소각 후 나오는 열에너지를 민간 지역난방회사인 ‘GS파워’에 판매하는 등 새로운 수익사업을 발굴한 것이다. 지난해 기준 30억원 정도의 수익은 운영위원회 의결을 통해 양 지역이 절반씩 나눠 가져가고 있다. 곽진훈 광명시 자원시설팀장은 “양쪽의 합의로 주민 갈등이 해소된 건 물론이고, 재정 절약 효과까지 생겼다”고 말했다.
눈앞의 이익과 불이익에 집착하지 않고, 이웃 지역 주민들과 주고 받고 나누는 노력이 지역사회를 더 건강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15년 전 환경빅딜은 여전히 평가 받을 만하다.
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김명선 인턴기자(고려대 철학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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