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떠도는 어느 통신업체 고객센터 직원의 고객응대 녹음파일을 들은 적이 있다. 내용은 대략 이렇다. 할머니께서 고객센터에 전화를 하셨고, 직원이 “ABC입니다”라고 전화를 받는다. 영어로 나오는 회사명을 할머니는 ‘불났어요’로 알아 들으시고 자꾸 반문하신다. 어디에 불이 났냐고. 그리고 드디어는 목욕탕에 불이 난 것으로 알아들으신다. 이 과정에서 잘못 알아듣고 끊임없이 물어 보시는 할머니의 질문에 고객센터 직원은 짜증이 날 법도 한데 한결 같은 대답을 한다. “ABC입니다.” “인터넷회사입니다.” “불난게 아니구요. ABC입니다.” 이 고객센터 직원의 친절한 대응에 많은 네티즌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드디어 이 직원은 ‘친절 끝판왕’에 등극했다.
처음에 전화 녹음파일을 들으면서 ‘참 친절한 직원이구나’ ‘젊은 사람이 대단하네’하는 대견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최근 보험을 판매하는 보험대리인을 대상으로 특강을 준비하면서 전화파일을 새로운 시각에서 생각하게 됐다. 고객에게 친절하게 응대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고객센터에 전화하신 할머니는 분명히 뭔가 궁금한 또는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친절한 응대로 할머니의 문제가 해결됐을까? 대답은 ‘결코 아니다’이다. 고객센터 직원은 할머니가 알아듣지 못하시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입장에서 계속 여기가 어디라고 이야기했고 할머니는 전화한 곳이 어딘지도 모른 채 전화를 끊으셨다. 아마도 그 직원은 본인에게는 너무나 친숙한 ‘인터넷’이라는 말이나 영어회사 이름을 할머니는 왜 알아 듣지 못하실까 생각하며 계속 이야기했을 것이다. 할머니는 자신의 궁금증을 풀어줄 수 있는 고객센터 직원을 원하셨겠지만 ‘친절 끝판왕’은 그저 ‘친절하기만’ 했을 뿐이다.
소비자는 수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충분하면서 정확한 정보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특히 다른 시장에 비해 보험시장에서 소비자들은 더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이유는 보험이라는 상품이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위험을 대비하기 위한 상품이라는 특성상 다른 시장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대리인이 존재하고, 소비자들은 전적으로 이들에게 의존해 위험대비의 필요성을 느끼고 정보를 찾으며 또 구매결정을 한다. 보험대리인이 하는 중요한 기능이 바로 정보제공이다. 정보제공이라는 역할은 보험대리인에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굳이 보험대리인을 들어 정보제공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보험소비자가 정보탐색을 하는데 보험대리인에 대한 의존도가 단연 높기 때문이다. 90% 이상의 소비자가 보험을 구매할 때 대리인을 통해 정보를 얻는다고 한다. 이들이 어떤 정보를 어떻게 소비자에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소비자의 의사결정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보험대리인의 정보제공자로서의 역할은 특히 중요하다.
‘정보제공’은 단순히 정보를 일방이 상대방에게 주는 것이 아니다. 정보제공자(일방)가 주는 정보가 제공자(일방)의 의도대로 정보를 제공받는 사람(상대방)이 이해해야 하며, 정보를 제공받는 사람(상대방)이 제대로 이해했음을 정보를 제공한 사람(일방) 또한 알게 됐을 때 비로소 이뤄지는 것이다. 즉 정보제공은 쌍방향이며 단지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이해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정보를 제공하는 보험대리인은 소비자가 정보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충분히 쉽게 그리고 정확하게 소비자의 언어로 설명할 의무가 있다. 보험대리인은 소비자가 가지고 있는 알권리를 충족시켜야 하는 의무가 있다. 앞서 이야기한 ‘친절 끝판왕’처럼 상대방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언어로만 이야기한다면 정보제공자라는 보험대리인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것이 된다.
소비자들은 단지 친절하기만 ‘친절 끝판왕’을 원하지 않는다. 자신이 궁금한 것에 대해 정확하고 충분한 정보를 이해하기 쉽게 전달해주는, 그래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도와주는 ‘정보제공자’를 필요로 한다. 물론 친절은 판매자든 소비자든 상관없이 사회생활을 하는 우리 모두가 갖춰야 하는 기본 덕목이다.
최현자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