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버셜 디자인 투어 고석열 대표 9년 전 외국서 장애인 여행 보고 설립
비용 부담스러울까봐 수익은 최소로 "더 먼 곳 도전 할래요" 말 들을 땐 뿌듯
정부와 대형 여행사들 관심 지원 촉구
뇌병변장애 2급 신랑과 지체장애 1급 신부는 지난해 10월 결혼 5년 만에 난생 처음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몸이 불편해 꿈도 못 꾸던 일이었다. 부부가 나란히 낙하산을 타고 하늘 높이 나는 짜릿한 경험도 했다. 이들은 “지금도 그 때 추억을 되새기면 부부 사이가 더 돈독해진다”고 입을 모았다.
장애인들은 흔히 ‘몸도 성치 않은데 먼 곳까지 어떻게 여행을 가느냐’는 생각에 해외여행을 포기하곤 한다. 수많은 문턱과 미비한 편의시설 등으로 집 밖 외출도 쉽지 않은 우리 현실을 떠올리면 이상한 생각도 아니다. 그러나 장애인 전문 여행사 ‘유니버셜 디자인 투어’ 대표 고석열(54)씨는 11일 “몸이 불편하다고 견문을 넓히거나 추억을 만들지 못하는 것은 차별”이라고 단언했다.
고씨가 이 사업을 시작한 것은 9년 전. 캄보디아를 방문했을 때 수많은 외국 장애인들이 눈을 반짝이며 앙코르와트 사원을 감상하는 것을 보고 나서다.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그는 이듬해인 2006년 10월 서울 광화문에 지체장애인 직원 1명과 작은 여행사를 차렸다. 장애인만 상대하는 여행사로는 처음이었다.
물론 장애인을 해외로 보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현지 가이드부터 손사래를 쳤다. 고씨는 “장애인과 여행하다 사고가 나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에 부담스러워하거나 ‘장애인이 돈을 얼마나 쓰겠느냐’며 수익성을 따지는 곳이 많았다”고 말했다. 소수 인원으로 출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장애인 전용차량 등이 필요해 일반 여행상품보다 1.5배 가량 비싸진다. 여행 프로그램은 철저히 경사로 등 장애인을 시설이 잘 마련된 곳들로 구성하고, 휠체어 리프트 차량, 장애인을 이해하는 현지 가이드도 필수다. 고씨는 “비싸면 고객이 부담스러워서 마음을 접기 때문에 수익은 5%도 안 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의 뜻을 높게 평가한 지인이 방배동 사무실을 흔쾌히 무료로 내준 덕분에 임대료 부담을 덜었다.
하지만 이 일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장애인에게 해외 여행은 단순한 여가가 아니라 인생의 전기가 될 수 있는 도전임을 알기 때문이다. 고씨는 “장애인들은 해외 여행을 하고 난 뒤 대단한 자신감을 얻어 돌아온다. 없는 살림에 돈을 모아서 다음에는 더 먼 곳 여행을 도전해 보고 싶다고 할 때면 여행사를 운영하길 잘 했다는 생각에 뿌듯하다”고 말했다.
현재 이 회사의 여행상품은 일본 중국 호수 스페인 등 10개국 12개 도시에 달한다. 이 여행사를 통해 해외여행을 한 장애인은 지난해 말까지 660명이 넘는다. ‘위험하다’는 주변의 만류에도 해외 신혼여행에 도전한 50쌍의 커플도 있다.
수익이 나아질 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고씨는 힘 닿는 데까지 여행사를 꾸려갈 생각이다. 고씨는 “한국관광공사나 통계청에 장애인 해외여행 통계조차 없을 정도로 한국은 장애인 해외여행 불모지”라며 “정부나 대형 여행사가 관심을 갖고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재진기자 blanc@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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