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보활동 폭로 내용 스노든과 달라
냉전시대 동독 스파이에 당한 독일, 간첩활동에 예민 초강경 조치 대응
미국은 우방 상대 정보활동 당연시 오바마, 메르켈과 통화서 언급 안 해
미국이 독일에서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휴대폰 도청에 이어 국방부와 독일연방정보부(BND)를 상대로 간첩활동을 한 사실이 공개되면서 양국 관계가 급속히 냉각되고 있다.
지난 1주일 사이 미국 스파이 1명을 체포하고 다른 1명의 조사에 들어간 독일 정부는 10일 베를린 주재 미국 중앙정보국(CIA) 책임자를 전격 추방 조치했다. 외신들조차 미국의 유럽 맹방인 독일의 조치가 아주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그 만큼 독일의 반감이 크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에드워드 스노든 전 CIA 직원의 폭로로 드러난 미국의 메르켈 휴대폰 도청 사건은 이번처럼 양국 외교 문제로 번지지는 않았다. 지금 양국 관계는 2003년 이라크 전쟁을 놓고 대립했을 때처럼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상황이 악화한 것은 첩보활동에 대한 양국 인식 차가 크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간첩활동은 2차대전과 냉전의 유물로서 아주 예민하게 여겨진다. 냉전시대 동독 정보기관 슈타지는 수많은 서독인 정보원을 심었고, 1974년 빌리 브란트 총리는 자신이 총애한 비서가 이런 첩자인 사실이 드러나 사직했다. 반면 미국은 국가의 정보활동 행위는 당연한 것이고, 정보수집에는 우방이 따로 없다는 입장이다. 미국처럼 독일도 다른 나라의 정보를 수집하고 있고 이는 당연한 국가 행위라는 것이다.
미국 스파이 체포 다음날 양국 정상 간 전화통화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메르켈에게 이 문제를 언급하지 않은 것도 상황을 더 꼬이게 만들었다. 오바마는 사전에 백악관 비서실장이나 CIA 국장으로부터 이런 사실을 보고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는 미국이 유럽과 독일에서 팽배해지고 있는 미국 스파이 활동에 대한 불만을 평가절하한 것으로 비쳐졌다. 필립 크롤리 전 국무부 차관보는 “미국은 독일이 브라질 월드컵 결승전에서 승리하기를 기원해야 한다”며 “그래야 잠시 이 문제가 수그러들 수 있다”고 말했다.
오바마 정부는 독일의 CIA 책임자 추방에 구체적 반응을 내지 못한 채 전전긍긍하고 있다.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정보문제란 이유로 사실확인을 하지 않은 채 “미국은 이번 사안을 엄중하게 보고 있다”고 짧게 말했다. 젠 사키 국무부 대변인도 정례브리핑에서 질문이 계속됐지만 어떤 논평도 거부했다. 미국이 독일 외교관 추방이란 맞불조치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구체적 내용에 대해 더 언급할 것이 없다”고 말했다.
양국은 조만간 존 케리 국무장관과 프랑크-발터 스타인마이어 독일 외무장관의 전화통화에서 해법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 언론은 독일의 상황이 예상보다 심각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최근 독일 언론에 폭로되는 미국의 첩보활동이 스노든의 폭로 내용과는 다르다는 점이 특히 주목을 끌고 있다. 정보 전문가들은 국가안보국(NSA)의 활동을 폭로할 ‘제2의 스노든’이 나타난 것으로 보고 있다고 의회전문지 힐은 전했다. 스노든의 폭로를 처음 언론에 공개한 언론인 글렌 그린월드도 “제2 누설자의 존재가 있는 게 분명해 보인다”는 글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렸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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