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1927, 미국' 빌 브라이슨 지음ㆍ오성환 옮김
까치 발행ㆍ584쪽ㆍ2만5,000원
美 1927년 여름 일상 속에서 대서양 횡단 비행 등 성공담 엮어
초강대국 탄생하는 과정 재구성, 팽창ㆍ황금만능주의 이면도 해부
“미국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안락한 국민이었다. 미국의 가정은 냉장고, 라디오, 전화기, 선풍기, 전기면도기 등 빛이 나는 가전제품과 내구 소비제품으로 광채를 발했다. 다른 나라들은 한 세대 혹은 그 이상이 지나서야 이런 생활 수준에 도달할 수 있었다.”(87쪽)
이 인용문은 1927년 미국을 처음 방문한 외국인들의 경탄을 전제로 한 것이다. 21세기인 지금 미국은 가장 안락한 정도가 아니라 세계 위에 군림하는 초강대국이다. 인용문의 생활용품들을 현재의 첨단 제품들로 업그레이드 시킨다면 실제와 보다 일치할지 모른다.
저자는 1920년대, 특히 그 정점을 이루는 1927년의 여름을 살았던 미국인들의 일상으로 들어가 미국이 단기간에 강대국으로 탄생하는 과정을 재구성한다. 무엇보다 절호의 기회였다. 그 직전까지 세계를 장악했던 유럽 열강들이 제 1차 세계대전으로 힘을 탕진하자 대서양 건너편의 비교적 후진국이었던 미국은 1920년대부터 유럽을 제치고 강대국으로 성장한다.
그 상징적 사건이 새파란 청년 린드버그의 대서양 횡단 비행이다. 세계를 열광시킨 한여름의 이벤트였다. 그 사건 아래에는 당시 세계 전체 물자 생산량의 42%, 세계 영화의 80%, 자동차 생산의 85%를 차지했던 미국의 막강한 경제력이 버티고 있었다. 나머지 세계 전체의 금 보유량과 동일한 황금을 미국이란 일개 국가가 독점하고 있던 때였다. 유럽에 비해 뒤져 있던 분야가 단 하나, 비행이었다.
책은 먼저 혜성처럼 나타난 무명의 비행사 린드버그에게 ‘5월 청년’이란 별칭을 달아 그를 추적해 간다. 문자 그대로 하룻밤 만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된 그는 어메리컨 드림의 상징이 된다. 린드버그가 결과적으로 미국을 일약 민간 비행 산업 분야에서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뒤 잇는 ‘6월 베이브’는 미국 야구 역사상 최강팀 뉴욕 양키스의 노장 베이브 루스의 화려한 성공담이다. ‘7월 대통령’에서 캘빈 쿨리지와 허버트 후버의 숨가쁜 정치적 활약을 따라가던 책은 ‘8월 무정부주의자’에서 반정부 투쟁의 거두들을 좇아가다 적색 공포와 증오가 대륙을 뒤덮던 ‘9월 여름의 끝’으로 결말을 맺는다.
팽창과 황금만능주의의 이면에 도사린 부작용도 이 책의 주요 관심사다. 19세기 말 영국에서 매춘부를 뜻하던 단어 ‘flapper’가 당시 미국에서는 자유를 구가하는 ‘신여성’을 가리키는 말이 됐을 정도로 젊은 여성들의 행동은 거침이 없었다. 그러나 당대를 풍미하던 음악, 재즈를 가리켜 “병적으로 신경을 교란하며 성적 흥분을 일으키는 음악”이라고 비난한 신문 사설에서는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유려한 문장으로 사실들과 상상력을 꿴 저자의 필력 덕에 한 편의 장편소설을 보는 기분이다. 풍요의 행진에 가려 간과하기 쉬운 뜻밖의 사실 한 가지. 1920년대 미국에 불어닥친 독서 열풍이다. 엄청난 출판 역량, 북 클럽 열풍,‘타임’ ‘리더스 다이제스트’ 등 잡지 창간 바람, 황금기를 맞이한 신문산업 등 독서와 맞물린 일련의 사건들이 뒤따랐다.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