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그 타이밍을 놓치면 일을 그르친다.
대한축구협회는 브라질 월드컵을 마친 뒤 국민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협회는 그 시기를 놓였다.
협회는 이번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1무2패에 그친 홍명보 감독을 설득했다. 홍 감독은 사퇴를 원했지만 협회는 내년 1월 호주 아시안컵까지 대표팀을 맡아달라고 간곡히 요청했다. 고민하던 홍 감독은 마음을 바꿨다. 한국 축구를 위해 임기를 채우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이후 협회의 행동이 문제였다. 허정무 협회 부회장은 홍 감독의 유임 기자회견을 열었다. 월드컵 성적 부진은 협회의 잘못이라고 했다. 준비기간이 부족한 홍 감독에게 무리하게 지휘봉을 맡긴 점도 인정했다.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뒤 한국갤럽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52%는 홍 감독의 유임을 원했다.
그러나 협회의 유임 기자회견 이후 여론은 더욱 악화됐다. 협회는 브라질 월드컵에서 실망한 국민들에게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았다. 허 부회장은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니냐’는 물음에 “지켜봐 달라. 개선 방법을 찾겠다”는 원론적인 답변으로 일관했다.
축구팬들은 화가 났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모습에 비판 여론은 점점 거세졌다. 이 과정에서 홍 감독의 땅 구입 문제, 대표팀 선수단의 요란한 회식 등이 알려지면서 홍 감독은 사면초가에 빠졌다. 상처를 너무 많이 받았다. 결국, 홍 감독은 자진사퇴를 선택했다. 그 동안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던 협회도 허정무 부회장 등이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정몽규 협회 회장도 뒤늦게 국민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홍 감독은 24년 동안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고 최선을 다해 뛰었다. 한국축구를 위해 모든 것을 걸었다. 하지만 그가 떠나는 모습은 초라했다. 홍 감독의 경질을 원했던 일부 축구팬들도 원했던 장면은 아닐 것이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 하지만 홍 감독을 유임시킨 협회가 어떤 방식으로든 책임지는 모습을 보였다면 어떻게 됐을까. 협회가 실기(失期)만 하지 않았다면…. 노우래기자 sport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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