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홍명보 사퇴 인터뷰 "난 비겁하게 살지 않았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홍명보 사퇴 인터뷰 "난 비겁하게 살지 않았다"

입력
2014.07.10 16:07
0 0
홍명보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이 10일 오전 서울 신문로 축구협회 회관에서 열린 사퇴 기자회견에서 입장을 밝히며 다양한 표정을 짖고 있다. 김주성기자 poem@hk.co.kr
홍명보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이 10일 오전 서울 신문로 축구협회 회관에서 열린 사퇴 기자회견에서 입장을 밝히며 다양한 표정을 짖고 있다. 김주성기자 poem@hk.co.kr

홍명보(45) 축구 대표팀 감독이 2014 브라질 월드컵 실패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홍 감독은 10일 서울 신문로 대한축구협회 2층 회의실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마음이 무겁고, 가슴이 아프다”며 “월드컵 전 국민들에게 희망을 준다고 얘기했는데 결과적으로 희망 대신 실망만 드려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대표팀 감독으로 1년여 시간을 보냈는데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다”면서 “많은 실수가 있었고, 많은 오해도 생겼는데 성숙하지 못한 점에 대해 다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덧붙였다.

홍 감독은 “1990년에 처음 국가대표에 발탁돼 감독까지 대표팀에서 24년의 시간을 보냈다”며 “때로는 부족한 저에게 많은 격려를 해줬고, 따끔한 채찍질도 해줬는데 오늘로 이 자리를 떠나겠다”고 사퇴 의사를 밝혔다.

홍 감독은 브라질 월드컵을 1무2패로 마친 뒤 사퇴하는 방향으로 마음을 굳혔지만 대한축구협회의 만류로 내년 1월 아시안컵까지 대표팀을 맡기로 했다. 협회의 유임 논란을 시작으로 땅 매입설, 현지 여성과 음주가무를 벌이는 대표팀 회식 관련 동영상 등이 인터넷에 돌면서 홍 감독은 대표팀을 이끌 에너지를 잃었고 다시 사퇴를 결정했다.

그는 “귀국장에서 사퇴 의사를 밝혔다면 그냥 쉽게 비판을 조금만 받고 물러나면 됐을 것”이라며 “하지만 6개월 사이에 아시안컵을 새로운 감독이 준비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고 계약 기간도 아시안컵까지였기 때문에 책임을 다하고 싶었던 면도 있다. 또 비판을 끝까지 받고 떠나는 것도 마지막 일이라고 여겼다”고 설명했다.

당분간 가족과 시간을 보낼 것이라는 홍 감독은 “그 동안 부족했던 점을 다시 공부하겠다”면서 “다시 여러분 앞에 나타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국민 여러분에게 정말 감사했다는 말씀을 전해 드리고 싶다”고 했다.

한편 허정무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은 홍 감독과 동반 사퇴하기로 했다. 허 부회장은 “대표팀 단장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며 “홍 감독과 함께 동반 사퇴하기로 결심했다. 모든 책임을 축구협회가 떠안겠다”고 사퇴의 변을 밝혔다. 다음은 홍 감독과의 일문일답.

홍명보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이 10일 오전 서울 신문로 축구협회 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퇴를 밝히고 있다. 김주성기자 poem@hk.co.kr
홍명보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이 10일 오전 서울 신문로 축구협회 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퇴를 밝히고 있다. 김주성기자 poem@hk.co.kr

-유임 요청을 받아 들이고 나서 다시 사퇴 의사를 밝힌 배경은.

“사실 알제리전이 끝나고 사퇴에 대한 마음이 있었다. 그리고 벨기에전을 마치고 사퇴를 (협회에) 말씀 드렸다. 하지만 새로운 사람이 와서 6개월이라는 시간 안에 팀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또한 선수들이 눈에 밟혔다. 그래도 사퇴를 결심한 이유는 반성의 시간을 가지면서 결론을 내리고 판단을 했다. 많이 부족한 점이 있고, 과연 내가 대표팀을 더 이끌어갈 에너지가 있는지 많은 생각을 했다. 반성하고 후회하는 점들을 생각해볼 때 아직 부족하다는 생각을 해서 다시 사퇴 결심을 했다.”

-땅 매입, 회식 논란 등이 사퇴 결정에 영향을 미쳤는지.

“땅 부분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었다. 내 삶이 비겁하게 살지는 않았다. 훈련 시간에 땅 보러 다닌 건 절대 아니다. 회식 동영상 문제는 벨기에전을 마치고 이구아수로 돌아와서 선수들에게 폭포를 갔으면 좋겠다 했는데 선수들이 짐을 짊어지기 싫다고 해서 안 갔다. 어린 선수들이 패배에 대한 슬픔이 너무 깊었고, 위로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신중하지 못했다.”

-월드컵 실패에 대한 경험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일본 친구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았다. 다른 나라들은 떨어지고 감독이 바뀌었는데 한국은 그렇지 않아 월드컵 실패의 자산을 활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전술적인 부분도 그렇고, 선수 컨디션도 안 좋았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많이 잘못됐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선수들은 이번 월드컵이 큰 자산이 될 것이다. 협회가 다음 월드컵을 준비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내가 실패했던 부분을 정확히 넘길 것이다.”

-대표팀 감독은 독이 든 성배라는 말이 있는데.

“꼭 그렇지는 않다. 한국 축구는 선수도 그렇고 지도자도 그렇고 많이 발전했다. 독이 든 성배라는 본질은 대표팀 감독에 대해 주위의 많은 영향 탓이다. 나 역시 잘 알고 있었고, 오랜 시간 있어봐서 올바른 길로 가려고 했다. 그러나 모든 것은 결과론이기 때문에 난 실패한 것이다. 어떤 분이 새로 올지 모르겠지만 언론에서 한국 축구를 위해 많은 도움을 줬으면 한다.”

-향후 계획은.

“아직 생각하지 못했다. 그 동안 등한시했던 가족들에게 다시 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만일 월드컵 1년 전이라면 다시 어떤 걸 준비하고 싶은지.

“실패 원인을 생각해 보니까 내가 예선전을 거치지 않은 감독이라는 점이다. 그랬다면 선수들의 능력을 충분히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 보니 처음에 취임했을 때 팀의 골격을 내가 아는 선수들로 만드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했다. 지난해 7월과 올해 1월 국내 선수들을 대상으로 전지훈련을 하며 해외파 선수들과 많은 것들을 비교했다. 해외파는 우리나라에서 A급 선수들인데 유럽에 나가면 B급 선수들이다. 유럽에 있는데 경기를 하지 못하고, K리그는 (실력이) 낮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했다. 사실 국내파로 지난 1월 멕시코전에서 0-4로 패하며 생각이 바뀌었다.”

-선수 선발에 대한 논란이 일었는데.

“월드컵에 나가는데 좋아하는 선수만 데리고 나가는 감독은 없을 것이다. 철저하게 검증하고 냉정하게 판단했다. 그러나 밖으로 비춰질 때 안 좋게 비춰진 것은 내 실수라고 하지만 절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알제리전 비디오 분석이 부족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제리전은 나흘이라는 시간이 있었다. 4일 동안에는 회복 훈련하고 선수들의 피로도를 감안해야 한다. 알제리의 비디오 영상은 코칭스태프가 수십 번 봤지만 선수들이 영상을 두 번 보는 건 무리다. 알제리에 대한 대응은 실패했지만 비디오 횟수는 문제 되지 않는다. 상대 전술에 대처 못한 건 내 잘못이다.”

-선수들의 컨디션 관리가 실패라는 말도 나오는데.

“컨디션은 결과적으로 좋지 못했다. 체력이 올라오는 수치는 문제 없었지만 경기 체력은 부족했다. 후반에 체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는데 상대와 비교했을 때는 많이 떨어지지 않았다.”

-감독으로서 가장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은.

“국가대표 감독 자리는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비판이다. 자유로울 수 없다. 1년 되돌아보면 많은 일이 있었다. 축구를 많이 했다는 시간보다 다른 일들에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는 느낌이 든 것도 사실이다.”

-사의 표명 했다는 얘기를 바로 안 한 이유는.

“공항에서 말하면 비판 받고 쉽게 끝났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월드컵 실패를 했지만 과연 6개월 안에 새로운 사람이 와서 팀을 다시 만들 수 있을까 생각했다. 계약 기간이 아시안컵까지라서 책임을 다하고도 싶었다. 이런 상황이 또 벌어지면 다른 분도 계약 기간이 지켜지지 않을 것이다. 또한 비판을 마지막까지 받고 떠나는 것이 마지막 일이라고 여겼다.”

-안톤 코치 기술분과위원회 전력 분석은 어땠는지.

“굉장히 좋았다. 6월 마이애미 전지훈련 때 두 명의 코치는 러시아 그리고 알제리, 벨기에 전력 분석을 갔다. 그 친구들의 역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충분히 만족한다.”

-명예회복 기회가 있었는데 사퇴 배경에는 어떤 게 결정적으로 작용했는지.

“명예회복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감독 처음 취임했을 때 말했는데 내 명예는 축구에서 얻었다. 축구에서 떨어져도 아무렇지 않다. 축구 인생에 매번 성실하고 최선을 다했다. 사퇴를 생각하고 있다가 회장님하고 면담했는데 6개월이라는 시간은 명예회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선수들과 같이 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수락했다. 그러다 보니 과연 내가 6개월을 잘 할 수 있을까. 1년도 못했는데 6개월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24년간 대표팀 생활을 하다 보니 지쳐 있었다. 사퇴 배경은 나의 모든 능력들이 아시안컵까지 가기에는 무리였다.”

-인터뷰를 보면 감독을 더 이상 안 하겠다는 뉘앙스가 풍기는데.

“선수와 코치, 감독까지 했다. 보이지 않는 재능이 또 있을 것이라 생각하다. 그 부분은 역시 축구다. 그 동안 해왔던 사회공헌활동도 해야 하고, 주위의 어려운 사람들도 도와줘야 한다. 여담이지만 미국 대통령 재임 기간 역할을 잘 못한 게 지미 카터 대통령이다. 그러나 임기 이후 가장 많은 업적을 남긴 사람이 그 분이다. 항상 이순신 장군의 정신을 머리에 새기고 지도자 생활을 했다. 24년 동안 대한민국을 위해 최선을 다했고 많은 성원을 받아 감사하다.” 김지섭기자 onion@hksp.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