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수 꿈꾸는 20대女 성장 이야기
뉴욕 출신 감독의 흑백 뉴욕도 볼거리
주인공은 감독의 연인ㆍ스팅 딸 출연
뉴욕의 평범한 거리를 우디 앨런만큼 낭만적으로 담아내는 영화, 흑백 영화의 우아한 매력에 근사한 방식으로 경의를 표할 줄 아는 영화, 철부지 아이에서 어른이 되는 20대 후반의 성장통을 사랑스럽게 포착하는 영화. 노어 바움바흐 감독의 ‘프란시스 하’는 낭만적이고 유쾌하며 사랑스러운 영화다. 별다른 사건 하나 일어나지 않는데도 끝까지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마지막 장면이 끝나고 나면 ‘가장 보통의 존재’라 할 만한 주인공을 꽉 껴안아 주고 싶어진다.
캘리포니아 출신으로 무용수를 꿈꾸는 프란시스는 둘도 없는 친구 소피(가수 스팅의 딸 미키 섬너가 연기)와 함께 뉴욕 브루클린의 작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스물일곱살이지만 그가 하는 행동은 선머슴 같은 말괄량이 10대 소녀와 다를 바 없다. 친구에게 유치한 장난을 하고, 지하철 플랫폼 끝에서 선로 위에 소변을 보고, 길거리를 달리다 넘어지고….오죽하면 처음 만난 여자에게서 “얼굴은 (소피의) 이모뻘인데 철은 덜 들었네”라는 말을 들을까.
무용수로 유명해지겠다는 거창한 꿈을 꾸지만 몇 년째 평범한 연습생 신세인 프란시스의 현실은 남루하다. 애인과는 사소한 말다툼으로 헤어지고, 룸메이트 소피가 독립하는 바람에 머물 곳도 새로 구해야 한다. 크리스마스 공연에 설 기회도 끝내 얻지 못한다. 좀 더 현실적인 소피는 프란시스에게 이렇게 말한다. “뉴욕에선 부자 아니면 예술 못 해.”
오랜만에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돌아온 뒤에도 일은 계속 꼬이기만 한다. 파리에 사는 친구를 만날 겸 여행길에 오르지만 결국 길거리만 배회하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돌아온다. 늘 함께 있고픈 친구 소피는 남자친구 따라 일본으로 간다고 한다. 뭐 하나 되는 게 없는 청춘, 그러나 프란시스는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는다. 멀리 있어도 마음이 통하는 친구가 있고 내일을 기대하게 만드는 꿈이 있으니까.
영화에서 주인공만큼 중요한 캐릭터는 뉴욕이라는 이방인들의 도시다. 브루클린, 차이나타운, 포킵시, 워싱턴하이츠 등 뉴욕의 여러 지역이 영화의 각 장을 구획한다. 길거리, 아파트, 지하철, 공원, 식당 등 뉴욕의 평범한 장소들이 현실 속의 낭만을 펼쳐 보인다. 영화가 종종 우디 앨런의 ‘맨하탄’이나 ‘애니 홀’을 떠올리게 하는 것도 뉴욕이라는 도시와 프란시스라는 독특한 캐릭터 때문이다.
흑백으로 촬영한 영상은 프랑스 누벨바그 감독인 프랑수아 트뤼포, 장 뤽 고다르의 고전 영화를 연상케 하고, 프란시스가 두 남자 룸메이트와 함께 있는 장면은 짐 자무시의 ‘천국보다 낯선’(1984)을 닮았다. 데이비드 보위의 ‘모던 러브’가 흐르는 가운데 주인공이 길거리를 뛰는 장면은 레오스 카락스의 ‘나쁜 피’(1986)에 대한 직설적인 오마주다. 그렇지만 ‘프란시스 하’는 앞서 언급한 어떤 영화들과도 다르다.
뉴욕 브루클린 출신인 바움바흐 감독은 웨스 앤더슨 감독의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 각본을 썼고 ‘오징어와 고래’ ‘마고 앳 더 웨딩’ 등을 연출했다. 감독의 여자친구이기도 한 주연배우 그레타 거윅은 빼어난 연기를 보여줄 뿐 아니라 각본도 감독과 함께 썼다. 우정과 꿈에 대한 기분 좋은 성장 드라마인 이 영화의 제목은 주인공 이름에서 따왔는데 ‘하~’ 뒤의 이름은 마지막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17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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