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 판정 기준 중요 단어만 바꿔 자신의 연구인 양 他 학회지에 게재
교신저자로 상습적 무임승차, 프로젝트 따 낸 뒤 연구 떠넘기기 일쑤
제자가 쓴 논문을 자신의 연구결과인 것처럼 학회지에 게재한 사실이 드러난 김명수 교육부 장관 후보자의 사례처럼 아직 교수 사회에는 논문 표절이 관행처럼 남아있다.
‘복사’해 ‘붙여넣기’하는 수준으로 제자의 연구 결과를 노골적으로 베끼고, 제자의 논문에 이름을 올려 자신의 실적을 올리기도 한다. 프로젝트 연구에서 연구보조인 제자에게 대부분의 일을 맡겨놓고 교수는 이름만 앞에 내세우는 것은 특별한 일도 아니다.
2008년 8월 서울 모 사립대 경영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A씨는 같은 해 열린 하계학술대회 자료집을 보다가 지도교수 B씨의 논문을 보고 깜짝 놀랐다. A씨가 2007년 12월 박사 학위논문 예비심사를 위해 B 교수에게 제출한 논문을 짜깁기한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쓴 논문의 핵심 아이디어가 그대로 녹아 있었다.
A씨에 따르면 참고문헌 목록에 A씨가 참고용으로 한 줄 넣어둔 메모까지 그대로 B 교수의 논문에 실렸고, A씨가 논문에서 인용한 연구결과 중 네 문장은 B 교수 논문에 단어 하나 바뀌지 않고 들어가 있었다. 영어논문을 인용해 분석한 문장을 그대로 쓰면서 단어 몇 개만 번역을 다르게 해 게재하기도 했다.
A씨는 “당시 박사 학위논문 예비심사에 B 교수와 대학원생 C씨, 연구교수 D씨가 참관인으로 참석했는데 불과 6개월 만에 이들 3명의 이름으로 논문이 나왔다”며 “급하게 마우스로 긁어 붙이다 보니 내 메모까지 복사해간 것 아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논문은 이듬해 A씨의 메모를 지우는 등 수정을 거쳐 학술지에도 실렸다.
A씨가 학술대회 자료집에서 지도교수의 표절 논문을 발견한 것은 공교롭게도 대학원생 C씨가 자신의 논문을 표절한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과정에서였다. A씨는 “2011년 C씨의 논문 관련 자료를 살펴보다 우연히 지도교수가 베낀 논문을 보게 됐다”고 말했다. 논문 하나를 놓고 지도교수는 물론, 논문심사 참관인까지 베끼는 무절제한 표절 관행의 단적인 모습이다.
이 대학 연구윤리위원회는 2011년 A씨의 논문표절 제보를 받았지만 이듬해 표절이 아니라는 최종 판정을 내렸다. ‘원문에 대한 번역 또는 인용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유사성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창의적인 아이디어 도용 부분에 대해서도 ‘창의성을 지나치게 확대 적용했다’며 타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B 교수에 대해서는 이렇게 관대한 잣대를 들이대던 연구윤리위원회는 그러나 C씨의 논문에 대해서는 ‘부분표절’이라고 판정했다.
2008년 교육부가 발표한 논문표절 가이드라인은 ‘주요 단어를 중심으로 여섯 단어 이상 연쇄적인 표현이 타인의 논문과 일치하는데도 출처 표시를 하지 않은 경우’를 표절로 본다.
한국연구재단 산하 연구윤리정보센터 운영위원인 이인재 서울교대 교수는 “표절이 아니라는 판정을 받으려면 가져다 쓴 내용이 상대방의 저작물에서 핵심이 되는 중요 부분이 아니어야 한다”며 “그러나 이 중요성에 대해서는 시각에 따라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판정을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판정 대상이 누구인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노골적인 논문 표절과 짜깁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제자들의 연구결과에 무임승차하는 경우도 흔하다. 논문 지도는 뒷전이고 상습적으로 제자들의 논문에 교신저자로 이름을 올려 자신의 논문 발표실적만 챙기는 식이다.
서울의 모 사립대 경영대 E 교수는 매년 제자들의 논문 서너 편에 교신저자로 자신의 이름을 올려 발표해왔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수업시간에 과제로 받은 짧은 논문 중 잘 쓴 것을 약간 수정해 본인의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이런 일은 은밀하게 이뤄져 자신이 제출한 논문이 학술지에 실린 사실을 모르는 학생도 있었다. 이 대학 석사과정을 수료한 D(31)씨는 “논문 통과 도장을 찍어주지 않겠다고 협박해서 E 교수가 교신저자로 이름을 올렸다”며 “최근 몇 년간 학내 부설 연구소에서 E 교수 이름으로 나온 논문들은 원작자가 모두 학생일 것”이라고 말했다.
모 국립대 보건대학원 대학원생 F(26)씨는 정부에서 발주한 연구과제에 보조 연구원으로 참여했다. 그러나 보조연구원인 F씨가 혼자 연구를 떠 안았고, 교수 5명은 수십 쪽에 달하는 보고서 중 달랑 두 쪽을 썼을 뿐이다. F씨는 “나는 그나마 공동저자로 이름이라도 올려 다행이었다”며 “교수 중 70% 이상은 관행적으로 이런 짓을 한다”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k.co.kr
한형직기자 hjhan@hk.co.kr
김진욱기자 kimjinu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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