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단체의 열렬했던 시진핑 환영
‘보수=친미’ 관행에선 의아한 현상
미국 일변도 시각에서 균형 잡을 때
한국에서 보수를 자처하는 사람들에게는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지나치게 친미적이라는 것이다. 이들의 미국 사랑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인데, 그들의 친미적 사고와 태도를 집약적이고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행동이 집회에서 성조기를 흔드는 것이다.
지금은 조금 뜸하지만 2000년대 들어 보수단체가 주관하는 집회에는 성조기가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전시작전통제권 반환에 반대할 때, 미군 철수에 반대하는 기도회를 할 때, 북한의 남침 야욕을 규탄할 때, 남북정상회담에 반대할 때, 한미동맹의 강화를 요구할 때, 촛불시위에 반대할 때,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환영할 때 이들은 미국 국기인 성조기를 흔들었다. 심지어 삼일절과 광복절에도 성조기를 흔들었는데 이를 두고 제 나라의 독립운동기념일과 독립기념일에 남의 나라 국기를 흔드는 것이 과연 올바른 행동이냐는 논란이 있었다. 일부 미국인은 한국인들이 틈만 나면 성조기를 흔들어 대 도리어 민망하다고 했다.
이들처럼 극성스러운 행동으로 반공친미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정치인, 관료, 기업인, 교수, 언론인, 종교인, 문화예술인 등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 가운데도 미국식 가치와 제도를 지지하고 그것들을 한국에 도입하려는 인사가 적지 않다. 미국식 가치를 불변의 진리로 여기며, 성조기를 흔드는 사람보다 더 교묘하게 그것들을 확대하려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기회를 찾아, 공부를 하기 위해, 더 넓은 세상과 더 다양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 무언가에 도전하기 위해 최강 국가를 찾아간 사람들과도 다른 부류다.
보수단체 가운데서도 이제는 지명도가 상당히 높아진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이 다른 보수단체들과 함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을 적극 환영한 것은 그래서 의아하다. 이들은 시 주석의 방한을 앞두고 환영 성명을 발표하고 주한 중국대사관 앞에서 태극기와,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를 흔드는 퍼포먼스를 했으며 심지어 태극기와 오성홍기를 향해 절까지 했다. 홈페이지 첫 화면에 태극기와 성조기를 나란히 걸어 유난한 미국 사랑을 과시하는 이들이 시 주석의 방한을 과하다 싶을 정도로 반긴 것이다.
전문가들은 시 주석의 방한이 미국의 동북아시아 전략에 맞서 이뤄졌다고 수없이 강조했다. 말하자면 시 주석의 한국 방문은 미국에 맞서겠다는 중국의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그렇다면 집회 때 성조기를 흔들며 미국 사랑을 표출한 보수세력이 시 주석의 방한을 환영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들의 행동이 일관성이 없고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다는 글이 온라인에 올라온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시 주석을 그토록 과격하게 맞은 데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하나는 시 주석의 방한을, 핵실험을 고집하는 북한에 대한 중국의 경고로 보았기 때문일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보수 세력들이, 자신들이 뽑은 박근혜 대통령이 하는 일이니 무조건 지지하자는 심리를 보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들이 미국과 중국의 패권 대결이라는 큰 그림 속에서 시 주석의 방한을 읽어 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설사 그렇더라도, 그토록 미국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중국 지도자를 과하게 환영했으니 혹시 한국의 보수세력이 국제정세에 조금이나마 눈을 뜬 게 아닌가 궁금해진다. 동북아의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한국이 더욱 신중하고 주체적인 외교를 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이구동성에, 막무가내로 미국만 바라보던 보수세력이 조금 흔들리는 게 아닌가 하는 막연한 생각도 해 보지만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을 것이다.
박 대통령이 시 주석과 만난 것은 동북아 질서에 대한 고민 때문이었다. 일본은 전쟁할 수 있는 나라가 되려 하고, 미국은 그런 일본을 지지하며, 한국은 반대로 일본을 경계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럴 때 우리가 친미, 반미, 친중, 반중 어느 한쪽만을 좇는 것은 현명하다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제껏 미국으로 편중된 우리의 태도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한쪽으로 기울지 않은 평평한 운동장에 서야 세상을 똑바로 볼 수 있다. 그럴 때 혼란스러운 상황에 대처할 수 있다.
박광희 부국장 겸 문화부장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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