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체테(machete)는 무딘 칼이다. 대상이 정글의 잡목이든 뭐든, 베는 게 아니라 부러뜨린다. 그러자니 무거울 수밖에 없고, 무게중심도 칼날 앞쪽에 쏠려 있다.
그건 전투 무기로선 치명적인 약점이다. 무게중심이 몸에서 멀어질수록 칼은 통제하기 힘들어진다. 카리브해 연안국 원주민들에게 저 칼이 농기구에 가까운 생활필수품으로 만들어진 까닭이다. 하지만 마체테는 오랜 식민지와 독재 시절 저항과 혁명의 무기이기도 했다. 저 둔한 도신(刀身)은 그렇게, 어떤 정신의 상징이 됐다.
혁명의 나라 아이티의 한 남자가 마체테를 들고 이제는 잊혀가는 전래의 몸짓을 아들에게 가르쳤고, 그걸 우연히 본 미국의 한 영화제작자가 검술 같기도 하고 검무(劍舞) 같기도 한 그 ‘위협적인 아름다움’에 꽂혀 영화를 찍기로 했다고 한다. 자본이 문화를 식민화하면 저항도 상품이 될 때가 있다.
최윤필기자 proose@hk.co.kr 아이티=AP 연합뉴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