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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으로 보는 세상](10)수학적 장난에서 얻은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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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으로 보는 세상](10)수학적 장난에서 얻은 교훈

입력
2014.07.09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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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자 공저거리 측정에 촘스키·장 피아제 등장

에르되시 수가 일깨운 학문 간 교묘한 네트워크

헝가리 출신 수학 기인 폴 에르되시는 논문을 많이 쓰고(1,500편 이상) 공저자가 많기로(수백 명) 유명했다. 수학에서 논문을 공저하는 일은 다른 과학에 비해서 적다고 알려져 있다. 생물학 같으면 공저자가 100명 이상인 논문이 드물지 않지만, 수학에서는 같이 써도 두세 명이 보통이고, 혼자 쓰는 논문이 대다수다. 그래서 에르되시가 주목을 받았고, 수학자들은 농담 삼아 ‘에르되시 수’의 개념을 정의하기도 했다.

어떤 사람의 에르되시 수는 에르되시까지의 ‘공저 거리’를 측정한 것이다. 에르되시의 공저자는 에르되시 수가 1이다. 에르되시의 공저자는 아니지만 에르되시의 공저자와 공저한 일이 있으면 에르되시 수는 2다. 이런 식의 패턴은 짐작이 갈 것이다. 예를 들자면 김정한 고등과학원 교수는 에르되시 수가 2다. 같이 논문 쓴 일이 있는 호주의 워말드 교수가 에르되시의 공저자였기 때문이다. 이승철 연세대 교수는 에르되시 수가 3이다. 에르되시 수가 2인 김정한 교수와 공저한 일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에르되시 수 이야기는 농담일 뿐이다. 그렇지만 학문의 연결성에 대해 알려주는 바가 있다. 이 사람 저 사람의 에르되시 수를 찾아보면 큰 수가 나오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는 것을 금방 발견하게 된다. 내가 아는 수학자만 찾아봐도 5 이상 나오는 경우가 없다. 사실 수학도 분야가 상당히 다양하기 때문에 이 사실이 놀랍기도 하다. 에르되시가 일한 분야는 이산수학, 그러니까 조합론, 그래프 이론과 관계가 많았다. 8월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수학자대회의 한국인 연사들의 분야를 조사해보면 강석진-대수학, 김범식-대수기하학, 김병한-논리학, 이기암-해석학, 하승렬-수리물리, 황준묵-복소기하학 등으로 나뉘고 모두 이산수학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에르되시 수는 각각 3, 4, 3, 4, 4, 4로 모두 작다.

이런 현상은 사회적 네트워크 이론에서도 관측된다. 친구는 1, 친구의 친구는 2 식으로 ‘친분 거리’를 측정해보면 세상 대부분 사람까지의 거리가 6 내외라는 추측도 있다. 실 세상 친구가 아닌 페이스북 친분 거리를 측정했을 때 전 세계 회원 사이의 평균 거리가 4.74라는 결과를 페이스북 데이터팀이 2011년 발표하기도 했다. 페이스북 친구가 되기는 쉽지만 학문적 연구를 같이 하기는 상당히 어렵다. 때문에 공저 거리조차 이런 식으로 작게 나온다는 건 수학의 통일성을 내포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에르되시 수로부터 시작한 공저 거리 게임을 훨씬 광범위하게 해볼 수 있는 도구를 미국수학회 웹사이트에서 운영하고 있다. 임의의 수학자 둘을 입력하면 두 사람 사이의 공저 거리를 측정해준다. 예를 들면 김병한, 황준묵 교수 사이의 거리는 4다. 이 데이터베이스에서 검색이 되려면 물론 언젠가 수학 관련 논문을 썼든지 수리과학자와 공동연구라도 했어야 한다. 그런데 통상적으로 수학자로 생각되지 않는 사람도 많이 나온다. 아인슈타인, 파인만, 맥스웰 같은 물리학자가 나오는 건 비교적 자연스러울지 모르겠다. 그러나 생물학자 존 홀데인, 경제학자 아마탸 센, 철학자 넬슨 굿맨, 언어학자 노암 촘스키, 심리학자 장 피아제도 들어 있다는 사실에는 수학자들도 놀랄 것이다. 이 유명인사들로부터 박형주 서울세계수학자대회 조직위원장까지의 공저 거리를 조사해본 결과 아인슈타인 4, 맥스웰 6, 파인만 7, 홀데인 7, 센 6, 굿맨 7, 촘스키 5, 피아제 6이다. 모두 얼마 되지 않는 거리다.

학문 융합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시대에 살고 있어 즐겁다. 분야 사이의 경계를 심각하게 다루지 않는 분위기가 나처럼 대화를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공부를 쉽게 해준다. 그러나 고독하게 특화한 연구를 하는 학자도 시공간에 끝없이 연장돼 있는 보편적 학문의 교묘한 네트워크 속에서 구체적으로 기여하며 살고 있다는 사실이 에르되시 수 같은 작은 장난으로부터 이끌어낼 수 있는 일종의 교훈이다.

김민형 영국 옥스포드대 수학과 교수ㆍ세계수학자대회 조직위원회 학술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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