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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렬 칼럼] 남한산성을 살아있는 산성으로

입력
2014.07.0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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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돈벌이로 전락돼선 안 돼

남한산성의 진정성, 완전성 고려해야

과거와 현재 어우러진 역사현장으로

남한산성이 드디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이로써 한국은 11개의 세계문화유산을 보유한 문화유산 강국이 됐다. 그러나 유네스코가 이 제도를 만든 원래의 취지를 생각하면 자랑할 일만은 아니다. 1960년대 이집트 정부는 나일강 중류에 아스완 하이댐을 건설하기 시작했고, 고대 문명의 세계적 보고인 누비아 유적이 수몰될 위기에 처했다. 유네스코는 범세계적인 보호운동을 펼쳤고, 유명한 아부심벨 신전을 해체, 이전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를 계기로 1972년 세계유산협약을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협약의 핵심은 훼손될 위기에 처한 문화유산의 목록을 작성해 해당 국가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보호 노력을 기울이자는 것이다. 이 당시의 기준에 따르면 세계문화유산을 많이 보유한 국가일수록 유산 보호에 취약한 문화적 후진국이라는 말이 된다.

어찌됐든 문제는 등재 이후의 관리 방향이다. 해당 지자체들이 기대하듯 관광 위주로만 치우친다면 자칫 해당 유산을 훼손하고 격을 낮추는 우를 범하기 쉽다. 이미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안동의 하회마을은 하루 최대 방문객이 3만5,000명에 달할 정도로 관광 명소가 됐고, 이들을 수용할 무수한 요식업소와 숙박업소가 범람하게 됐다. 주민 생활은 사라지고 조악한 상업 활동만 성행하면 문화유산 등재 자체를 취소할 수도 있다. 세계문화유산은 원래의 성격, 다시 말해 진정성과 완전성을 보존할 때만 가치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임진왜란의 참혹한 폐해를 겪은 조선 정계는 전국에 튼튼한 산성을 쌓아 유사시에 대비하자는 산성수축론을 논의했다. 1626년 완공된 남한산성은 그 수축론의 구체적인 결실이었다. 그러나 높은 산 위에 쌓은 산성은 군사적 방어에 유리한 반면, 주민 생활이 어려운 단점이 있었다. 실학자들은 산성으로는 평지 주민들의 재산과 목숨을 보호할 수 없고, 관리도 어렵다는 비판을 가했다. 이에 조선 정부는 산성 안에 광주유수부를 설치해 행정 중심 마을을 조성하게 됐다. 1683년에 유수부를 설치해 1917년 폐지할 때까지 남한산성의 산성마을은 수도권의 중요한 군사, 행정, 산업의 거점이었다. 평균 1,000호의 민가가 있었고 4,000여 주민이 살았던 당시로서는 산성 안의 커다란 도회지였다.

남한산성은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굴욕적으로 항복한 역사적 경험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그 치욕은 불과 45일간 벌어졌던 단기간의 기억일 뿐이다. 지금까지 짧게는 4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많은 주민들이 다양한 삶을 살아왔던 역사적 가치는 잊어버리고 있다. 예를 들어 산성마을이 효종갱이라는 해장국을 만들어 매일 새벽 한양의 양반집들에 배달했던 활동이라든지, 구한말 의병운동과 일제기 독립운동의 수도권 거점이었던 사실을 과연 알고나 있는지.

남한산성의 성곽은 세계 최대급의 규모와 1,000년에 걸친 수축 활동으로 가치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성곽은 내부의 마을과 주민 생활을 보호하기 위한 담장일 뿐이다. 현재 산성 안에는 난잡한 대형 식당과 거대한 주차장만 눈에 들어온다. 비록 행궁과 객사 등 조선시대 유적들을 복원하고 있지만, 이 산성을 지키고 가꾸어야 할 주민들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이들의 주거지나 생활은 보이지 않는다. 과거는 되살리지만 현재는 죽어버린 불구의 마을이다. 그 빈자리에 연간 350만명에 달하는 관광객들만 가득하다.

유럽의 산성 도시들 같이 성곽 뿐 아니라 주민들의 거주와 생활이 살아있는 진정한 문화유산으로 가꾸어야 할 시기가 됐다. 적어도 무한대로 유입되는 차량은 제한할 필요가 절실하다. 셔틀 버스나 택시 등을 운영해 산성 안의 주차장을 없애고 잘 계획된 주거지역을 조성해야 한다. 거대 기념관 등 관광시설보다는 작은 도서관이나 유치원과 같은 주민용 문화복지 시설을 우선 마련하자. 주택을 비롯한 시설물들은 전통과 미래가 잘 조화된 새로운 건축을 창조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주민들이 거주하고 생활하는 살아있는 산성마을을 만들자. 그리하여 성곽 뿐 아니라 마을까지 세계문화유산이 될 때 비로소 세계적인 관광 명소도 될 것이다.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ㆍ건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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