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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벌처(Vulture) 펀드

입력
2014.07.0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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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고(Tango), 다음달 방한할 프란치스코 교황, 2014 브라질월드컵 최고스타 리오넬 메시의 공통점은 모국이 아르헨티나라는 점이다. 이 나라 국민은 중남미에서 콧대가 높고 자존심이 세기로 유명하다. 자신들이 유럽 백인의 후예(국민의 90%)라는 생각에 혼혈이 많은 브라질 등 다른 중남미 국가들을 대놓고 무시하기 일쑤다. 20세기 초반만 해도 세계 7대 부국(富國)으로 꼽혔으니 그럴만하다. 하지만 1950년대 이후 정치불안과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다. 현재 헤지펀드의 일종인 벌처펀드에 발목이 잡혀 다시 국가부도 위기를 맞고 있다.

▦ 사단은 2001년 950억 달러 규모의 대외채무에 대해 디폴트(채무불이행) 선언을 한 데 있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2005년, 2010년 협상을 벌여 채권자의 93%와 기존채권의 최대 75%가량을 탕감 받았다. 하지만 나머지 7%가 문제였다. 미국계 벌처펀드인 이들은 2008년 부실채권을 헐값에 사들인 후 탕감협상에 불참하고 2012년 미국 법원에 원리금 반환소송을 냈다. 채권매입에 쓴 돈은 4,800만 달러. 청구금액은 액면가 기준 13억3,000만 달러로 투자금의 약 30배였다. 한술 더 뜬 건 미국 법원이다. 벌처펀드의 손을 들어주면서 전액 상환은 물론이고, 이 돈을 전부 갚을 때까지 탕감된 다른 채권자들의 남은 채무도 갚지 못하도록 판결했다.

▦ 벌처펀드는 부실채권에 투자해 고수익을 올리는 투기성 사모펀드다. 사체를 먹이로 삼는 독수리(Vulture)에서 따왔다. 1980년대 정크본드에 집중 투자한 마이클 밀켄이 선구자다. 2000년대 국내기업 KT&G에 대한 적대적 인수를 시도한 기업사냥꾼 칼 아이칸도 벌처펀드 운영자다. 벌처펀드는 1990년대 회사채를 넘어 국채로 영업범위를 확장했다. 중남미국가나 아프리카국가의 국채를 싸게 사들인 뒤 해당 정부를 상대로 원리금을 받아내거나 소송을 거는 식이다.

▦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최근 “미국의 강탈 행위에 굴복할 수 없다”며 벌처펀드 채무에 대한 전액상환 불가 입장을 천명했다. 하지만 지난달 30일로 채무상환 마감일을 넘겼고, 이달 30일까지 최종 국가부도냐 합의냐를 결정해야 한다. 지구상의 가장 냉혈한들이 운영한다는 벌처펀드에 코를 꿰인 아르헨티나의 처지가 안타깝다.

박진용 논설위원 hu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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