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역사의 수레바퀴 거꾸로 돌려"
시진핑·리커창 고강도 비난에 메르켈은 "美 스파이 유감" 딴소리
중일전쟁 관련 발언엔 침묵만
리커창(李克强) 중국 국무원 총리는 7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공동 기자회견에서 ‘예전의 일을 잊지 말아야 훗날 스승이 된다’(前事不忘 後事之師)는 말을 인용해 “역사의 교훈을 깊이 새겨야만 비로소 미래를 열고 평화도 보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글귀는 난징(南京)대학살 희생자 추모관에 걸려 있는 문구다. 리 총리는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이 시작한 대규모 전쟁에 맞서 중국 인민은 있는 힘을 다해 일어섰고 저항했다”며 77년 전 일본이 중국을 침략한 역사를 상기시킨 뒤 이 말을 덧붙였다. 앞서 시진핑(習近平) 주석도 지난 3월 독일 방문 때 일본군의 만행을 지적하며 이 말을 인용했다.
시 주석은 이날 베이징시 중국인민항일전쟁기념관 앞 광장에서 열린 ‘루거우차오(盧溝橋) 사건’ 77주년 기념 행사에서 “중국인민항일전쟁과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에서 승리한 지 70년이 다 돼가는 오늘날도 여전히 몇몇 사람들이 명백한 사실과 전쟁 중 희생당한 수천만명의 무고한 생명을 무시한 채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고 있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역사는 가장 좋은 교과서”라며 “누구도 역사와 사실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침략의 역사를 부정ㆍ왜곡하고 심지어 미화하려 한다면 중국인민과 각국 인민이 결코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거듭 일본 비판에 열을 올렸다.
이날 행사는 1937년 7월 7일 베이징 루거우차오 부근에 주둔한 일본군이 한 병사의 실종을 이유로 중국 침략을 본격화하자 중국 인민들이 항전에 나선 것을 기념한 것이다. 이 행사에 중국 주석이 참석해 직접 일본을 겨냥한 연설까지 한 것은 처음이다.
일본과 함께 제2차 대전을 일으켰던 독일 메르켈 총리의 이번 일곱 번째 방중은 공교롭게도 루거우차오 기념일과 겹쳤다. 일본의 역사인식을 집중 비판하며 자국의 세력 확대를 정당화하려는 중국의 시 주석은 지난 3월 독일 방문 때 전쟁 책임을 회피하려는 일본을 비판하려고 아우슈비츠 추모관 방문을 계획했지만 독일은 이를 거절했다. 독일과 일본은 전후 처리가 다르다며 곧잘 비교되지만, 중국이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려 드는 것이 독일은 마뜩잖은 눈치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도 메르켈 총리는 리 총리의 중일전쟁 관련 발언에 아무 말도 보태지 않았다. 대신 최근 미국의 이중 스파이 체포와 관련해 “사실이라면 매우 심각한 문제”라며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믿을 수 있는 협력을 고려하는 것은 모순”이라며 미국에 대한 불편한 감정만 드러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시 주석의 루거우차오 행사 발언에 대해 “중국이 쓸데없이 역사문제를 국제문제화 하는 것은 지역 평화와 협력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미래지향의 협력 관계를 발전시켜가는 자세야말로 국가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중국은 지난 3일부터 일본 전범들의 자백서를 매일 공개하고 있으며 이를 45일 동안 이어가겠다는 계획이다. 또 올해 항일전쟁승리기념일(9월 3일)과 난징대학살희생자추모일(12월 13일)도 국가 차원의 기념 행사로 크게 치를 것으로 알려졌다. 난징대학살희생자기념관은 전날 인터넷 추모 사이트도 개설했다.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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