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거리에서 목에 이름표를 걸고 있는 몇 사람과 마주쳤다. 이름표에 적힌 글자는 ‘단원미술관’. 그곳 주최로 무슨 행사나 탐방프로그램이 진행 중인 모양이었다. 어쨌건 나는 단원미술관이라는 데를 그제야 처음 알았는데, 그런 이름을 건 미술관이 있는지조차 몰랐다는 사실이 조금 계면쩍기도 했다. 단원 김홍도라면 무릇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 중 하나가 아닌가. 그 미술관이 어디에 있나 검색해 보았다. 근처가 아니라, 안산이었다. 김홍도는 안산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러면 세월호에 올랐던 학생들이 다닌 단원고등학교의 ‘단원’도, 김홍도의 그 ‘단원’이란 말인가. 그의 그림들을 다시 훑어본다. 유머러스한 풍속화들이 마음을 착잡하게 한다. 그 중 서당의 풍경에 오래 시선이 머문다. 소년이 울고 있다. 운다기보다는, 서러운 눈물을 훔치고 있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볼을 붉히고 있는 것은 오히려 훈장님이다. 사뭇 난처해하는 얼굴인데, 빙 둘러앉은 다른 아이들은 하나같이 웃겨 죽겠다는 표정이다. 무슨 일이 있었길래 따끔한 회초리가 지나간 교실에 이리 훈훈한 기운이 감도는 걸까. 그림 속에는 한 명의 훈장님과 아홉 명의 아이들, 총 10명이 있다. 바다 속에는 아직도 11명의 실종자가 있고, 그 중 많은 이들이 단원고 학생과 선생님이다. 앞으로 단원의 이 그림을 볼 때마다 단원고의 어떤 교실과 세월호가 떠오를 것만 같다. 기억은 늘 예기치 않은 자리에서 호출된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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