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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한국 외교의 딜레마

입력
2014.07.06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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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를 앞둔 지난 3월 미생지신(尾生之信)이라는 고사성어가 화제가 됐다.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기초선거 무공천을 논의하자며 이 말을 꺼냈다. 여당 대선 후보 시절 무공천 약속을 지키라는 의미였다.

미생은 중국 노(魯)나라 때 사람으로 다리 밑에서 연인과 만나기로 한 약속을 굳게 지키느라 마침 내린 큰 비로 개울물이 불어났는데도 자리를 떠나지 않다가 물에 휩쓸려 죽고 말았다. 신의(명분)와 현실(실리)이 갈등할 때 어느 쪽을 택하는 게 옳으냐고 따질 때 곧잘 인용되는 고사다.

살다 보면 명분과 실리가 충돌하는 경우를 얼마든지 만난다. 과연 명분과 실리 중 어느 쪽을 우선하는 게 옳을까. 짐작하겠지만 한 가지 답은 없다. 이 고사를 중국 고전이 어떻게 인용하는지가 그 어려움을 잘 보여준다. 고사가 등장하는 ‘사기’의 ‘소진열전(蘇秦列傳)’이나 ‘장자’의 ‘도척편’에서는 미생의 신의를 어리석다고 조롱한다. 심지어 도척은 도적 주제에 공자를 향해 “명분에 매여 죽음을 가볍게 여기고 생명을 돌보지 않은 이런 자들은 잡기 위해 매달아 놓은 개나 제물로 강물에 내던져진 돼지나 바가지를 들고 구걸 다니는 놈과 다를 게 없다”고 퍼붓기까지 했다.

물론 유가는 이런 생각을 우습게 여긴다. 직접 미생을 거론한 유가의 고전은 없으나 ‘맹자’의 ‘등문공 하편’에 나오는 ‘자신을 굽히는 사람은 남을 바로잡을 수 없다(枉己者 未有能直人者)’라는 말만 봐도 그렇다. 맹자는 절개만 고집하지 말고 융통성을 발휘하라는 제자에게 원칙을 훼손하고 타협으로 얻는 실리는 길게 봐서 결코 득 될 게 없다고 꾸짖었다.

외교야말로 끊임없이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추구하는 지난한 작업이다. 병자호란의 역사가 입증하듯 특히 강대국 사이에 끼인 한반도로서는 이 둘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는 때로 절체절명의 과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한국을 다녀간 뒤 우리 외교가 시험대에 올랐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중국 최고지도자가 북한을 제치고 일본을 포함시키지 않고 한국을 먼저 그리고 따로 방문한 것은 처음이었다. 중국은 이번 방문을 “친척집 방문”(왕이 외교부장)이며 “상호신뢰”와 “우호적 감정”을 끌어올리려는 목적이었다고 결산했다. 그 수사 뒤에 미 동맹국 체제를 흔들어보겠다는 전략적인 계산이 깔렸음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우리가 중국에게서 챙길 수 있는 실리 역시 비교적 명확하다. 전체 수출의 4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과 경제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 최대 안보 위협인 북핵 문제를 푸는데 중국을 지렛대로 삼아야 한다.

이런 실리를 챙기려면 당연히 서로 굳게 손을 맞잡아야 한다. 문제는 국가간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로 실리를 추구해가는데 따라야 할 큰 명분이 별로라는 점이다. 시 주석은 엊그제 서울대 강연에서 “평화를 수호하는 중국, 협력을 촉진하는 중국, 겸허하게 배우는 중국”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런데 방한 직전 연설에서는 “영토주권, 해양권익 수호를 견지하며 변경ㆍ해안방어에서 철옹성을 구축하라”는 말을 했다.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 일방 선포나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막대한 군비 지출 등을 보면 중국의 참모습이 어느 쪽인지 가늠이 된다. 게다가 중국은 여전히 일당독재에 민주주의와 법치를 요구하는 시민들을 탄압하는 나라다. 소수 민족의 자치권 요구도 묵살되고 진압 된다.

한국 외교가 안은 딜레마는 중국의 힘은 커져 가는데 계속 미국에 줄 서 있어야 할지, 그 줄을 중국으로 바꿔야 할지, 아니면 양다리 걸치기 해야 할 지가 아니다. 실리는 눈에 보이는데 거기에 명분까지 갖춘 외교를 해나가기가 점점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이다. 다국간 외교에서는 실리와 실리가 충돌하는 상황이 얼마든지 생긴다. 오로지 실리만 추구하는 외교란 애초 있을 수도 없다. 명분이 뚜렷해야 그런 갈등을 헤쳐갈 수 있다.

중국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그 과정에서 실리만이 아닌 어떤 명분이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무조건 중국 편은 안 된다고 내심 걱정하는 미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 답을 얻어야만 한국 외교에 힘이 생길 것이다.

김범수 국제부장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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